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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현실논단

[현실논단] 하나님을 아는 것

입력 : 2020. 09. 24  00:00 | 디지털판

 

 

창간호로 대체한 본지 1호 첫 페이지엔 사이비 단체인 녹림청월 여론조작 사건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을 반성하고 돌이키던 첫 순간을 담고 있다. 누군가는 한 목사의 설교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삶의 족적은 아니어도 말 그대로 삶의 방향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년 후를 바꿀 ‘하나님을 아는 것’ 부흥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으로 살아갔을 것이다.


시작은 하나님을 알고 싶은 열망 속에 숨은 삶의 비참함이었다. 모든 것이 다층적으로 얽히고설켜 하나의 문제. ‘죄’로 드러난 시대적 배경은 충분히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식하기 좋은 풍토를 만들었다. 개신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말처럼 쉽지 않다. 돌이킨다는 말의 의미는 삶을 전면적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회심과 회개가 그런 의미다. 내 삶은 바뀌지 않았다. 쳇바퀴 돌며 돌아가던 고장 난 감겨버린 테이프처럼 같은 부분을 반복하던 상태였다.


예언서를 통해 야훼 하나님은 끊임없이 소외된 이웃을 주목하고 회개하라고 가르친다. 애석하게도 히브리 백성들은 알아듣지 못했고 제 갈 길로 나아가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포로기 시대를 겪으며 눈물의 애환 속에서 야훼 하나님을 찾았다. 그런 모습에 비춰, 신의 형상을 갈망하고 더 나은 삶을 고대하던 10년 전 내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집으로 돌아가던 한 시간 시내버스, 목사의 ‘하나님을 아는 것’ 시리즈 설교를 들으며 나의 처참한 삶의 현실을 깨달으며 인간의 나약함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총제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조금씩 부분적 습관들을 고쳐나갔다. 이를테면 완벽주의 성향을 가진 마음가짐을 스스로 조절하며 ‘모든 것은 완벽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버스 한 번 놓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다음 계획을 수정하며 수립하는 과정에서 느긋함을 깨달았고.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놓지 않은 것처럼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놓지 않고 있다는 믿음이 발현되면서. 나 자신 한 사람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평범한 인간이고 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유아기 시절에 잃었던 감성(感性)을 되찾는다.

 

 

인생은 바뀌는 거라고
훈수를 두지는 않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삶은
고고하게 흘러간다고

 


가수의 울먹이는 노래를 들으며 신(神)이 아닌 기억을 노래할 수 있고. 신에 대한 아가페 사랑만이 사랑이 아닌, 뜨거운 에로스와 끈끈한 필레오, 어떠한 상황에서도 끊이지 않을 스톨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인간의 독특한 감정과 관계, 환경과 상황을 경험하며 한국어에도 다양한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와 신과의 독특한 일대일 관계에서 비로소 타자를 인식하고 세계로 외연이 확장되는 삶을 이어가며 면역성을 갖춘 인간상을 깨달았다. 사람은 문제를 경험하면 잘못을 인식하고, 잘못을 인식하며 조금씩 바뀌어 나가는 거구나, 그게 오랜 시간 걸쳐 이뤄지는 거구나, 깨달으며 오늘에 이르렀다.


10년의 시간이 결코 짧게 느껴지지 않는다. 인생의 절반에 이르는 시간 축적되어 온 삶의 양식이 지금에 이르러 오늘 나를 형성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10년 전 사람들은 어쩌다 신앙이 변했냐고 따져 묻는다. 나도 이렇게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 때문이라 말해도 믿지를 않는다. 이제 더는 인간이 죄인이라는 구습(舊習)을 믿지 않는다. 지그문트 바우만이 가리킨 캐릭터에 주목해, 인간의 다양한 상(像)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며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살아갔다.


과거를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바울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던 것”(1고린13,11)처럼. 오히려 과거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삼으며 과거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 변해가는 것들을 죄악시하며 바뀌어가는 것들에 실망하지만. 시대는 바뀌어 가고 나 자신도 달라져 간다. 떠나가는 사람들 풍경을 바라보며 실망을 운운하는 그대가 이 글을 읽지는 않을 테지만. 10년 후에도 이 글을 기억하기 위해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