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도서

정민규 목사의 스캔들이 준 아케다 교훈:『나쁜 하나님』

자유의새노래 2018. 10. 8. 21:44

입력 : 2017. 11. 07 | 수정 : 2018. 10. 08 |

 

나쁜 하나님
주원규 지음 | 새움 | 312쪽 | 1만3800원

 

도코모토 일식집에 모인 중년 남성들. VVIP룸에서 여성을 사이에 끼고, 성적 행위를 하고 있다면 어떤 집단이라고 생각할까. 놀랍게도 율주교회 장로회와 담임목사 이야기다.

 

미국 뉴욕 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일하던 정민규 목사가 14년 만에 한국 율주에 돌아와 율주제일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나쁜 하나님’은 다소 자극적인 소재를 담고 있다. 시무(始務)하던 교회에서 맨해튼음대 최연소 박사 출신인 김연주와 스캔들이 벌어지면서 끝내 모든 걸 잃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것도 교회에서, 아내에게 발각이 됐으니, 그 충격에 대한 상상은 독자의 몫이다.

 

◇스캔들이 벌어지고 부임한 민규, 마지막 희망은 그에게 있다

안개로 답답했던 마을, 14년이 지나서야 돌아온 민규는 율주에서 자랐다. 마을은 달라졌지만, 교회는 아니었다. 하나 있다면, 국회의원 배지를 단 김인철이 교회 실세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한국으로 건너 왔지만, 예상 의외의 적을 만났다. 율주제일교회 실세 김인철 장로다. 아버지에 이어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거드럭거리던 그에게 제공한 선물은 ‘회’였다. 며칠 후 같은 일식집 VVIP룸에서 가진 술자리를 이기지 못해 박차고 나가려는 민규에게 협박한 김 장로. 먹고 살 문제가 달려 있는 그 자리를 끝내 뿌리치지 못하며 민규는 김 장로와 한 배를 탄다.

 

교회 문제는 김 장로 독주뿐만이 아니었다. 교회 건물과 연결 돼 있는 ‘신애원’ 복지시절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타와 인권 유린은 14년 전, 민규와 약혼까지 한 여인, 김정은을 ‘창녀’, ‘정신병자’로 몰아낼 만큼 폐쇄적이며 공격적이었다. 몇 년 간 막혀있던 신애원을 향한 구름다리의 문을 연 이는 한영호 장로다. 민규를 청빙하기 위해 평소 잠잠히 있던 그가 목소리를 냈다. 자물쇠로 잠긴 구름다리로 향한 문을 열기 전, 그는 창세기 22장에 나온 아케다 사건을 연구한 민규의 논문을 읊는다.

 

신애원을 향한 구름다리의 문을 연 판도라 상자 같은 사건은 또 벌어진다.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인 정은이 신애원 건물까지 민규를 데려 오면서부터, 베일에 가려진 율주제일교회의 진실을 보게 된다. 눈빛을 잃고 피 멍이 든 아이들, 바닥에 앉아있는 소녀 허벅지 곳곳 멍 들지 않은 살이 없을 만큼 처참함을 목도한다. 그리고 말한다. 마지막 희망은 정민규 목사에게 있다고.

 

◇타락한 교회 시스템을 꼬집다

장로 김인철과 담임목사 정민규의 갈등을 현실적으로 그러낸 요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전적 부패(Total Depravity)였다. 칼 바르트 교의학을 들고 미국으로 떠나 여행용 가방 하나만 가지고 돌아온 그에게 인간의 전적 부패는 김 장로가 민규를 협박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룸 곳곳에 설치 된 CCTV는 죄가 없다고 주장할 만한 이유를 해제시켰다.

 

모든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했기 때문에 평등하고 동등해야 할 인간이 오히려 권력을 가짐으로써 담임목사로 청빙된 민규에게도 죄를 짓게 해 빠져나갈 구멍을 막아 놨다. 그렇게 율주시 남성으로서 김 장로를 거치지 못한 타락한 인간은 없었다. 누구도 김 장로의 잘못을 들춰내지 못하도록 입막음하기 위해 자신의 권력을 이용했다. 정장을 곱게 차려 입은 김 장로는, 신애원 복지 시설 소녀 앞에서는 구릿빛 탄탄한 몸집을 가지고 있는 변태 노인에 불과했다.

 

민규를 처음 보좌했던 보좌관 고동식은 국회의원으로서 김인철을 보좌했지만, 교회 장로로서 김인철 장로에 관해서는 냉대했다. 종교에는 관심이 없던 그에게 느껴졌던 냉담함은 지금 한국교회를 바라보고 있는 일반적 국민들의 인식과 다르지 않았다.

 

김 장로의 움직임을 동물적 감성으로 표현한 민규의 묘사는 살기 위한 동물적 감성, 그것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생각, 사유는 커피를 마시며 느낄 수 있는 느긋함이자 낭만적 게으름이었다. 민규에게 남은 건 교인들의 눈초리였다. 이미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민규의 편은 아무도 없었다.

 

교역자 치리를 드러낸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소문을 들었던 교인들은 담임목사를 신뢰하지 않을 뿐, 주일예배를 참석하며 일상을 지냈다. 율주제일교회를 통해 드러내고 싶은 건, 타락한 교회 시스템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평범한 교인이었다. 교인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반발도 하지 않았다. 잠잠히 있을 뿐이었다.

 

◇아케다 사건, 고전적 해석과 결별한 민규

문제 해결에 단서가 된 열쇠에는 민규의 박사학위 논문이었다. 출판되지도 않았음에도 한영호 장로와 율주제일교회 초대 목사인 유재환 목사는 민규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아브라함이 포악한 이교로부터 야훼이즘을 지켜낼 수 있는 방법론 중의 최선은 그들이 연출한 종교 의식의 극단적 재연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이를 초극하는 새로운 신성에 대한 갈망을 도출해내는 데 있었다.”

 

내부 고발자가 되어 김 장로의 신애원 복지시설 비리를 드러내 타고 있던 배와 함께 침몰하기를 바랐다. 구치소에서 지낸 한 달 동안 신은 누구인가, 자신의 행위를 사유했다. 아브라함 이방적 이교 행위를 실천했다는 입장에서 민규는, 도코모토 VVIP룸에서 성적 학대를 제의 행위로 받아들였다. 감옥 생활을 각오했지만 뜬금없이 구치소를 나오라는 후배 경정의 말은 의아했다.

 

담임 목사로 계속 사역해달라는 유재환 목사의 부탁에는 어떤 이유로 구치소를 나올 수 있었는지를 설명이 없었다. 오직 담임목사직을 유지해달라는 홀어머니뿐이었다. 종교 활동하던 김 장로와 스캔들 난 담임목사 민규. 그들이 믿고 있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제대로 믿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고 묻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바쳤던 아케다 사건을 아브라함의 믿음과 희생으로 해석하기보다, 결말은 말 그대로 문자적인 해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브라함이 가진 믿음으로 가르쳤던 히브리서의 연장선에 더 나아가, 저자의 해석을 살펴보는 게 저서의 포인트다.

 

뉴스앤조이 강도현 대표는 이 소설을 두고 ‘극사실주의’로 표현했다. 물론 챕터 1까지 읽고 내린 평가다. 이 소설을 극사실주의로만 보기에는 구치소에서 갑자기 풀린 민규의 상황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렇지만, 교회에서마저도 동물적 감성과 권력, 권위가 등장하고 있다는 ‘보이지 않는 세계’ 묘사는 그 어떤 소설보다 강렬하다.

 

‘성서적 신앙생활’, ‘가장 성서적인 신학’, ‘침묵하는 하나님’을 다시 질문하게 만들며 만들어진 신 이미지를 율주제일교회로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건가, 답을 모르는 질문으로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