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현실논단

[현실논단] 광복: 이 어처구니없음을 끝내고

입력 : 2019. 08. 15 | 수정 : 2019. 08. 23 | A28


존엄 파괴한 전체주의
光復, 전체주의 종결
교회 내 여전한 私益은
東奔西走하게 만들 것

“탈영한 아들의 시체 앞에서 느끼는 욕된 감정과 전사자로서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아들의 영령 앞에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다.”(기억전쟁, 73)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1995년 일본 ‘아사히신문’이 게재한 권터 그라스(Gunter Grass)와 오에 겐자부로(大江 健三郎)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사학자 임지현은 전쟁이 한창일 때 일본군 헌병대가 처형된 탈영병 시신을 짓밟는 모습에서 이를 지켜만 보던 어느 부모 이야기를 이렇게 표현했다. 처형된 자신의 아들을 치욕스럽게 여기며 “천황제로 대변되는 전체주의 윤리가 가족 안에까지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73)이라던 오에의 지적에 지금 “이 나라가 파시즘”이란 비난을 잊게 만든다.


전체주의는 모든 영역을 제어하고 점령했을 뿐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 자체에 침투해 인간됨을 잊게 만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나치 전체주의를 지적한 지점이 여기였다. ‘전대미문의 극단적인 악의 출현’으로 가리킨 수용소가 등장하자 나치 체제는 유대인이란 이유로 무죄한 사람을 가둬 법인격을 말살했다. 유대인은 책임져야 할 가족을 죽음으로 몰 것인지, 친구를 죽여 살해해야 할지 양자택일 하도록 만들어 도덕적으로 인격을 말살시켰다. 인간성 상실의 핵심은 자발성의 상실이다. “파블로프의 개”로 묘사된 이들은 철저히 잉여 인간으로 전락했다. 나치 체제가 바라던 총체적 지배의 목적인 것이다.


총체적 지배로 향하기 위해 부품처럼 사용된 이들은 알다시피 평범한 시민이다. 옛 유고슬라비아 내전 전범을 재판하며 증언한 동네 이웃은 학살자들을 ‘파리 한 마리 죽일 수 없을 만큼 착하기 그지없는 청년들’로 묘사했다(151). 전체주의가 독일에서 발생한 현상이며 평범한 독일인 사이에서 벌어진 체제라면 사학자 임지현도 긴 지면을 할애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부끄러움의 해방적 역할’을 강조한 이유는 방관자 논리가 희생자 의식에 내포하기 때문이다. 전쟁범죄를 저지른 일본제국에 원폭 피해자를 앞세워 장막으로 가린 부끄러움은 희생자 의식 속에 사라졌고, 괜한 일본인 미나토자키 사나(湊﨑紗夏)에게 전쟁 범죄를 뒤집어씌우며 애써 우리 안의 민족성을 강조한 폭력적 민족주의 가면은 현재에도 전체주의 잔상으로 남았음을 보여준다. 광복절은 조국이 해방된 기쁘고 즐거운 날임과 동시에 전체주의 체제가 종결된 극적인 날이다. 현인신(現人神)이자 숭배 대상이던 일왕은 한갓 보잘 것 없는 노인임이 드러난 기쁘고 즐거운 날이었다.


광복을 맞이하고 74주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여전히 전체주의 망령(亡靈)을 보고 있다. 현인신으로 등장한 목사와 민족주의로 비춰진 교회 중심 집단주의다. 권능이란 이름을 오용한 이재록을 따르던 만민중앙교회 교인들은 그가 정말로 병 고칠만한 능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해당 교회에서 사임 또는 ‘은퇴하는’ 위임 목사의 배우자 및 직계비속과 그 직계비속의 배우자”는 위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음에도 ‘은퇴한’ 김삼환 후임으로 김하나가 담임목사로 청빙되어도 문제없다며 “아멘”하고 대답한 명성교회 교인들을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나치 전체주의를 형성한 것은 평범한 독일 부르주아였다. 나치스에 입당한 하인리히 힘러와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적 인물이다. 평범한 시민과 정치가를 비정상 중의 비정상인 전체주의에 하나 되게 만든 원인은 “사생활 속에 은거하고 가정과 출세 문제에만 오로지 헌신하는 태도”(전체주의의기원2, 66), 사적 이해관계가 제일이라 믿는 태도 때문이다. 살기 위해 부조리한 악의 구조가 존재해야 한다는 사적 이익은 타자를 보지 못하게 만들어 인간 존엄성 파괴를 이뤄냈다. 평범한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해 사적 이익에 충실하면 충실할수록 전체주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이들은 깨닫지 못했다.


교회를 지키기 위해 아들이 담임목사가 되어야 하고 교회를 살리기 위해 범죄자 목사를 비호하는 비정상적 현상에 우리 사회는 혀를 내두른다. 해방 74주년을 맞이했지만 한국교회는 여전히 전체주의 잔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 세계를 복음화하겠다는 획일적 인식을 버리지 못한다면 교회는 여전히 사적이익 지키느라 동분서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