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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전두환 시대의 부장 혼자서 한겨레와 조선일보 읽던 토요일 점심이었다. 다짜고짜 내 어깨를 치면서 부르는 손짓을 느꼈다. “다시는 도서관에 오지 마라”는 협박과 함께 문장 사이에는 욕설이 섞였다. 두 해 지나서야 발붙이지 못했던 도서관을 어렵게 오고갔고 추운 겨울 박근혜 탄핵을 맞이했다. 지금도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번갈아 읽던 20대 청년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협박한 그 인간이 선명하다. 86세대라 불리는 전두환 세대와 첫 인연이다. 복학하면서 다양한 86세대 사람들을 만났다. 부동산 업자로 살아가다 은퇴한 장로님.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다 잘 풀리지 않은 집사님. 자기 말론 기타치고 방탕하게 살다가 기독교로 귀의한 전도사님. 후배들이 인사 안한다고 찡찡대던 투잡 전도사님.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거하게 대접해준 권사님. .. 2022. 7. 24. 더보기
오피니언/시대성의 창 [시대성의 창] 지옥에도 맞설 수 있는 용기 인간이라면 “미안해” 이 한 마디 당연한데 말할 용기도 없으면서 지옥을 어떻게 이기나 사이비 종교 S집단이 미인계를 사용한 모양이다. 고개를 흔들며 “그런 인간, 거르는 게 답”이 나올 만큼 친구 얼굴은 찡그린 상태였다. 누가 순박한 내 친구에게 미인계를 사용했는지 몰라도 그 종교 참 몹쓸 집단이란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순수한 감정을 자극해 불러일으킨 연민에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던 가스라이팅 수법이 저급했다. 진지한 대화 끝에 아는 사람을 소개시켜주고 특정 교리를 공부하도록 이끄는 과정이 S집단 자체를 가리켰다. 인간이라면 충분히 느낄 불편함에 대고 “그런 감정 느껴서 양심의 가책도 안 느끼냐” 물었고 불쌍함 최대한 끌어 올려 도움 받으려다 선 긋는 실력은 다시 봐도 하수(下數)였다. 코로나19 첫 집.. 2022. 7. 24.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힘없는 인간일지라도, 당신을 교회 문제로 엄마와 싸우다 한 마디 앞에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그렇게 힘들면 뭐 하러 교회에서 일을 하니? 안 다니면 되는 것을.” 맞는 말씀이라 할 말이 없었다. 스트레스 받으면서도 교회를 다니고, 힘들면서도 무급으로 봉사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교회라는 시스템에 몸이 맞았기 때문이고, 교회를 나와서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유를 알지 못했고, 나도 그런 사실을 13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이제는 일요일 아침 9시에 일어나도 예배당을 찾지 않는다. 그 흔한 대형교회 유튜브 스트리밍조차 청취하지 않는다. 기독교가 내 몸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몸이 되기까지 지난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교회를 나오고 군복무 마쳐서 돌아온 신학교는 여전히 형편없었다. 룸살롱 다녀오고도 아무 문.. 2022. 7. 24. 더보기
[현실논단] 어차피 이현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비공개 기사입니다. 더보기
오피니언/일과속기록 [일과속기록] 교보문고 대전점 졸업 후, 3년 만에 찾은 대전점 의자와 카페 사라지고 말았지만 차곡차곡 쌓인 기억 지나치면서 오늘 살아갈 힘으로 북돋아준다 학부 시절 매일 가다시피 찾아갔다. 지금도 첫 순간을 기억한다. 이 좋은 델 이제야 오다니. 특유의 향기 속에서 탄식 섞인 감탄이 흘렀다. 몇 년 만일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 11월 입구 앞에 서자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머금었다. 익숙한 글판. ‘이토록 넓은 세상에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당신을 만났다’ 이젠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로 바뀐지 오래인 듯하다. 중앙에 위치한 카페를 지나쳐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은 기독교 코너였다. 늘 그랬듯 ‘볼 게 없다. 볼 게 없어’ 내뱉을 뿐이다. 음악과 철학, 인문 코너에 이르자 학부 시절 조별과제가 생각났다... 2022. 7. 18. 더보기
오피니언/ㅁㅅㅎ [ㅁㅅㅎ] 그리움과 슬픔의 이유 그리움과 슬픔의 이유 의자에서 밀려오는 그리움에 눈을 감는다 등에서 흐르는 시냇물 바르르 속삭이는 나뭇잎 고요히 거니는 참새 때로는 견딜 수 없는 감정이 못 미덥다 찾아온 이유를 묻는다 아무 말도 없지만 하고픈 말, 하루에 스미어드는 뜻밖의 슬픔 기적은 어쩌다 다가오지 않으며 널 생각할 그 때에 찾아온다고 차라리 없었으면 좋았을 감정들이 고독한 시간에만 찾아온다. 그리움과 슬픔은 떼지 않고 함께 다가온다. 회피한다고 될 일도 아니며 도망간다고 쫓아오지 않을 감정이 아니다. 숨이 막히는 듯한 상황에서 애써 숨을 쉬어가며 괜찮다는 말 밖에는 하지 못할 그때 역설을 발견했다. 그리움과 슬픔은 유한한 인간 존재를 밝히면서 지금, 여기에 충실할 것을 가르친다. 모든 것이 무한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소중한 가치를 말.. 2022. 7. 15. 더보기
오피니언/돌아보는 사건 [돌아보는 사건] 아베 피격과 종교 2세의 원한 1. 아베 일본 전 총리가 피격 되었습니다.(2022.07.08) 피의자는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41)이며 특정 종교 단체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사제 총기를 이용해 암살한 것입니다. 그는 아베에게 불만을 품고 있었고 살해할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본에서 발생한 정치인 암살은 1960년 아사누마 이나지로 사회당 위원장, 1990년 니와 효스케 전 노동부 장관, 2007년 이토 나가사키 시장 등이 있었지만 전현직 총리 암살로는 처음 발생한 사건입니다. 일본에서 발생한 정치인 암살은 극우주의 행동파나 야쿠자가 벌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아베가 우파의 아이콘이므로 극좌주의 단체나 재일교포가 아니냐는 추론도 있었습니다. 2. 암살 당일 야마가미는 어머니가 특정 종교에 빠져 많은 돈을 헌금.. 2022. 7. 11. 더보기
[사설] 껍데기 종교 기독교, 20년 만에 종언 비공개 기사입니다. 더보기
오피니언/사진으로 보는 내일 [사진으로 보는 내일] 토요일 저녁 5시 본가에서 돌아와 얼마 지나자 떠밀려온 향수에 젖었다. 그리움과 슬픔. 내일이면 다가올지 모를 죽음에 대한 파도가 발목을 스쳤다. 어제 토요일 저녁은 내일에만 초점을 맞추던 하루가 멈춘 시간이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에 주목했다. 땀방울도 마르게 할 차가운 터널의 숨결을 느꼈다. 아이를 품 안에 이것저것 가리키던 손가락을 카메라에 담았다. 케잌 들고서 뜨거운 공기를 헤치고 현관문에 도착하자 언제나 초코와 함께 반겨주던 엄마는 여전했다. 일상이라는 이름. 특별한 것 없음에도 하루를 멈추게 만드는 힘을 발견했다. 몸과 시간은 현재에 도달했지만 토요일 저녁 5시는 미래에 이미 도착해 그리움과 슬픔의 존재를 가르쳐준다. 언젠가 사람은 죽는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 후회할 거라면. 나를 사랑하고 엄마를 아끼고 생각나.. 2022. 6. 26. 더보기
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다시 정의를 생각한다 10년 전 화두는 정의였다. 경건한 삶 중심으로 신앙적 삶의 태도를 정의로 본 것이다. 그 시대는 현실세계보다 내면세계를 강조하던 그런 시기였다. 생각처럼 이뤄지지 않는 신앙의 삶은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도록 높은 도덕심을 요구했다. 높은 도덕심은 ‘구별된 삶’이란 근거로 “아닌 것을 아니”라 말할 용기를 안겼지만 돌아온 것은 사회와의 완벽한 분리였다. 교회와 사회의 분리는 단어로도 명확히 드러났다. ‘세상’과 ‘교회’가 아이히만의 ‘언어규칙’처럼 정의가 아닐 수 있음을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머리는 정의를 추구해야 하지만, 몸은 정의롭지 않으니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따라서 세속 정권은 자아를 포함한 신앙 세계를 파괴하는 악마적 존재로 보았고 허상의 적을 낳았다. 보이지 않는 적이 .. 2022. 5. 19. 더보기
오피니언/자유시 [자유시] ‘한 손엔 아이서퍼 한 발은 교보문고.’ 外 ○‘한 손엔 아이서퍼 한 발은 교보문고.’ 뛰어다니는 회사 위에 날아다니는 MZ 세대 있다. ○시간의 테두리 바깥에서 여름이에게 달려가는 지금. 살아가는 지금 이 시간이 서글픕니다. ○이름도 되찾고 나 자신도 되찾고, 그래서 역겨운 과거의 아이돌. 우리도 그때가 부끄럽다. 2022. 5. 3. 더보기
오피니언/시대성의 창 [시대성의 창] 예수가 다시는 부활하지 않았어도 향린교회가 재건축조합으로부터 예배당 침탈을 당했을 때의 일이다. 교인들은 향린교회 바깥 어두운 골목길에서 초라해 보이는 고난주간을 보내야 했다. 찬송가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힘없이 부르는 침참속 교인들 풍경이 낯설었다. 낯선 것은 예배뿐만이 아니었다. 기도하는 신자 분 메시지가 가슴에 와 닿았다. “십자가도 없이 싸늘하게 식은 저 예배당 안에서 홀로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을 “그 예수를 우리가 구원해야 할 때”라고 규명한 그분은 예수의 힘없는 무력한 광경을 목도했다. 기독교인에게 신의 전능성은 ‘무소부재’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엇이든 구해낼 수 있는, 무엇이든 가능한, 미래의 일들까지도 감찰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그러나 현대인에게 기독교적 신은 허상으로 보일.. 2022. 4. 19.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