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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철없는 어른도 성장은 합디다

입력 : 2020. 02. 09 | 수정 : 2020. 02. 11 | A6

 

‘진짜’라는 말 백 번 천 번 할 필요 없다. 직접 해봤다고 말하면 된다. 기억과 행동 대충 섞어도 괜찮다. 남들은 해보지 않았을 일이니까. 그래도 괜찮다. 사람들은 내 행동엔 관심 없고, 오로지 그 시점에 무엇을 느꼈는지만을 궁금해 할 테니까. 일상의 행복처럼 누구든 공감하되 세계 평화처럼 동떨어진 언어여선 안 된다. 대충 가능성 있는 성장 서사 눙쳐놓고 해봤다는 추진력 스까 놓으면 인생 선배로서 조언이 탄생한다. 독자 여러분은 ‘성장 서사’ 이 단어를 기억해 두시라.

성장 서사를 마케팅 요소로 사용한 이들은 유독 ‘진짜’라는 뉘앙스를 즐긴다. 말 그대로 자기 말이 진짜라는 말이다. ‘진짜’라는 단어를 한병철은 판매 논리(타자의 추방, 35)라고 지적했다. 판매논리는 남과 비교하는데서 시작한다. 말빨을 왜 키워야 하지? 계발을 왜 해야 하지? 성공을 왜 해야 하지? 공부를 왜 해야 하지? 독서를 왜 해야 하지? 존버를 왜 해야 하지? 왜를 묻기도 전에 말빨계발성공공부독서존버를 나열하고 나처럼 살고 싶으면 먼저 성공한 내 얘기를 들어보라 권한다. 진짜를 말하지 않아도 설명할 방법은 무궁무진한데도 말이다. 직접 보여주면 된다. 판매 논리를 숨기려 직접 보여주기를 실행한다. 사람들은 감쪽같이 속는다. 직접 해봤으니 당사자가 더 잘 알거라고 비호까지 한다.

비호한 이유 한 가지 더, 헬조선 자체에 ‘희망’과 ‘의지’를 불어 넣었으니 이만하면 됐다는 논리다. 그러니 내 사람 그만 까고 문해력 딸리는 너희들은 책이나 읽으시라. 자존감 낮은 인간들은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구나. 쓰레기들의 끝은 어디일까? 대화 불가. 아이코, 이를 어쩌나. 좋은 일 한다고 했거늘 공정위 아저씨가 다가와 자꾸만 뭘 빼라고 말한다. 성장 운운하던 그 사람 이마에 괴팍한 단어 하나가 보였고 이 광경에서 데자뷔를 느꼈다.

 

누군가의 절규.

자기 착취를 배경에 둔 인간들 행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배제의 정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더욱더 남들과 비교해댈 어휘력을 길러놓고 너희들과 다르다고 차별한다. 공간과 시간을 분리해 너의 시간은 발 디딘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부터 혓바닥에 나오는 모든 말을 적으시라 가르친다. 스스로가 고립되고 그사세가 돼버려도 상관없다.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니 너희들은 우리에게 배우시라. 진짜 성장, 진짜 인간은 이렇듯 집단 사이 숨어버려 쨉만 날려댄다.

누군가 불편한 이야기를 꺼낸다. 자기 착취적인 너희들은 무엇이 다르냐고.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다. 직접 해봤다는 말 한 마디 충분하듯 밤새도록 되새김질 한다. ‘나는 ○○이 아니다!’ ‘나는 ○○과 다르다!’ ‘나는 진정한 ○○이다!’ 온갖 동네 뒤엎을 심령대부흥성회는 남들도 모르는 우리끼리 부흥성회로 비칠 뿐이다. 이쯤 되면 성장서사가 더 이상 성장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성장을 위한 성장, 배제를 위한 성장은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기만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기독교가 무너진 배경엔 인간을 죄인으로 보지 않는 새로운 시각 덕분이다. 카리스마 탑재해서 경영하던 아저씨들 꼬부랑 할배 되어 이빨 빠진 호랑이 되고부터 교인 수는 급감했다. 새로운 콘텐츠, 보여줄 아이템도 없으니 비판에 문해력 타령. 자기와 목소리가 다르면 배신당했다고 아우성. 그러니 다 큰 어른이 ‘성장 서사’를 상품으로 내건다. “라떼는 말이야 선택이 중요했어, 알어? 내 것으로 삼으려 노력했다고. 진짜 인생에 최고의 선택을 하니까 이쯤 보니 성장했더라고. 그러니 좋아요 구독 좀 눌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