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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신학; 신앙

[신앙칼럼] “나무를 잡고 기도한들”

입력 : 2020. 05. 11 | 수정 : 2020. 05. 11 | A29

 

방학이 되면 각 교회의 전도사들이야 말로 곤욕을 치른다. 여름이 되면 여름성경학교나 수련회 준비로 바쁜 것이다. 이번 수련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아야 새해, 남은 학기를 순탄하게 이끌어갈 수 있기 때문인데 주바라기도 있고, 기독교캠프코리아도 있고, 별의 별 사경회, 부흥회 중에서 전도사들도 큰 맘 먹고 가게 된다는 흰돌산기도원은 단연 베스트다.

 

10년 전만 해도 윤석전 목사가 단 위에 서면 설교만 4-5시간은 상회했고, 찬송 한 시간, 통성기도까지 포함하면 새벽 2시 넘어 한 집회가 끝나기도 했다. 그래서 34일이지만 매 겨울을 기대했다. 다니던 교회도 흰돌산기도원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강한 책망, 예수 피를 향한 뜨거운 설교, 가슴을 울리는 찬송 소리. 뛰며 찬송과 기도를 하다보면 쉰 목이 일주일 이어졌고, 종아리엔 알이 배겼다.

 

마지막 윤석전 목사는 애절한 마음으로 부모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동안 잘못 살았노라 고백하라고 말한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이기시고반주 소리에 기도를 하다보면 부끄러운 마음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낯 부끄럽긴 하다. 무릎을 꿇었다기보다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가는 나의 현실이 비참하기도 했다. ‘내가 이것 밖에 안 되는 건가. 내 안의 예수는 살아있나

 

 

2008년 7월 20일, 흰돌산기도원에서  신앙을 세워야 나의 인생도 모든 것도 바뀌리라 믿었다.

그렇게 밤샘 기도를 하며 산에서 내려왔지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수련회를 마치고, 마지막 밤 대성전을 빠져 나와 산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아니 바람 소리만이 들려오자 소리 내어 방언으로 기도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고, 더는 뒤로 숨을 곳도 없다고 기도했다. 추운 나머지 이곳저곳 기도원을 돌아다니며 소리 없는 방언으로 기도했다. 새벽 3, 4. 아침이 밝기까지 성령님과 나만의 조용한 기도 시간은 이어졌다.

 

한 기자가 찍은 여의도 순복음교회 출입문,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교인 모습을 보니 순간 멈칫했다. 누군가에겐 교회가 코로나 여파 속 노아의 방주였을 테고, 일상일 테다. 하지만 현실은 기독교인만 걸리지 않는 코로나라거나, 클럽에__가면_죽는_병 따위는 없기에 모두가 숨죽이며 코로나 종식을 기도해야 할 때다. 그럼에도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대책 대신, 열여섯 출입방역 수칙을 정한다 한들 만에 하나 정말 100001 문제가 벌어지면, 책임은 고스란히 교인들 자신이 져야 한다.

 

물론 기독교인이기를 그만 둔,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추위를 뚫고 고생할 필요가 있었나 웃고 만다. 나무를 뽑을 만큼의 신화를 듣고서 삶이 바뀐 이들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을, ‘노력하지 않아도, 바뀌지 않아도 괜찮아하는 메시지에 주위를 기울였다면 강박에서 벗어나 부모를 사랑하고 여자친구를 아껴주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