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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

입력 : 2020. 07. 04 | 수정 : 2020. 07. 04 | A34


10년 전 일이다. 강경한 근본주의 신앙을 견지하던 내 입에서 울려 퍼진 세대주의 종말론 신앙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메시지 그 자체로 요약할 수 있다. 내용인 즉은 곧 전쟁이 임할 테니 모두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라는 예언이다. 알다시피 2010년 3월 북한에 의한 천안함 피격 사건과 나라 잃은 슬픔을 기억하려 시청 앞 광장에 10만 명이 넘는 교인들이 강사로 세운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아멘하던 시절이다. 때 마침 미디어의 실체라는 동영상에 심취하며 유럽연합이 정치적으로 통합하면 적그리스도가 출현함으로써 지구상 완전한 종말이 다가오니 휴거를 대비하라를 진지하게 믿었던 때였다.


예언은 보기 좋게 빗나갔고, 무슨 이유로 이 같은 메시지를 설파했느냐는 조롱을 받아야 했지만 당시엔 한 번도 틀렸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마태복음 24장 가락으로 짚어가며 “실제 내 눈 앞에 벌어지는 최후 심판의 날 같다”던 열여섯 소년의 메시지에 누나들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나도 그런 체험이 있었으면” 부러움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지금에선 콧방귀도 뀌지 않을 허무맹랑 극단적 세대주의 종말론이 지금에도 정치와 아이돌, 교육, 종교, 사회 곳곳에 퍼진 것을 보면 10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특히나 학창 시절 푸르디푸른 어린 소년이 무얼 알겠는가. 정확히 10년이 지나 그 때의 어리석음을 ‘부질없는 짓’으로 정의하며 신앙을 재해석하고 재평가 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내 모습을 10년 전의 내 모습과 일치하지 않음에서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교인들도 부지기수다.


과거와의 단절,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진부한 교훈도 이 지점에서 발견했다. 그렇게 뿔뿔이 흩어진 10년 전 사람들은 기억에서 잊혀졌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진부한 교훈을 도무지 받들기 어려운 사람들은 지금도 태극기를 들거나 카메라를 들고서 앨범을 사간다. 남는 것도 없는 알력다툼 세계로 들어가 자신들의 위대함을 예찬한다. 과거의 영광이 배경에 깔리고 상징폭력과 함께 등장해 이념이란 무기로 존재를 공격해 댄다. “살아야 한다”는 역설적 반 생명 인식이 그림자처럼 드리우는 동안, 민아의 비명이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지켜야 한다는 부질없는 생각들이 인간에게 지닌 삶의 정황(Sitz im Leben)을 파괴했고 살아야 한다는 역설적 반 생명 인식에 잠식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빗나간 예언들 앞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종교에 취하며 잊었던
생명적 가치를 새긴다
“관대하라” 남기셨던
병상 말씀만 남는구나


우연히 마주친 정미홍 전 아나운서 강연을 들으며 새벽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관련 영상에선 한 유튜버의 생방송이 종료된 녹화 본 영상으로 등장했다. 대한애국당 당장(黨葬)으로 마련된 정 씨 빈소로 향하던 발걸음에 유튜버도 포함되었다. 영상물을 뒤로하고 채널 영상을 하나 둘 살펴봤다. 평범해 보이던 이 아저씨는 음악과 사연을 읽으며 보이는 라디오 방송을 이어가던 유튜버였다. 그렇게 노래들이 스쳤다. 임태경이 부른 ‘My Destiny’를 지나 예민의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에 이르자, 무엇이 이 아저씨를 태극기 들게 만들었을까 물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그새 정미홍 씨가 단상에 올라와 강연하며 좌파, 우파로 나누던 말씀들이 떠올랐다.


10년이 지나 10년 전의 일들이 부끄러운 학창시절 사건이란 조각들로 절망했던 그 밤처럼 스쳐갔다. 잠시간 잊혔던 기억들이 되살아난 것이다. 당연히 복구하기 어려운 아픔으로 앞으로도 그렇게 잊히기를 바랬다. 하지만 잊지 않음으로 존재하는 기억들이 다시금 재소환되는 이유엔 기억을 기억나게 만드는 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공포팔이는 이 지점에서 등장한다. 이념처럼 단단해진 “살아야 한다”와 “지켜야 한다”는 구호가 뇌를 굳게 만들고, 생각을 중지하게 만든다. 존재를 등한시하고 살아있음을 혐오한다. 타인의 비명이 그 속에서 들려오지 않은 채 녹림청월식 피해서사만이 들어찬 역겨운 광경이 연출되는 것이다. 기억으로 아픔을 호소하는 피해자가 다시 재소환 된 기억 조각들 앞에서 자신을 변론하는 이 현상을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념 논쟁이란 부질없음에 하나 둘, 집단을 떠난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되찾고 있는다. “지켜야 했던” 조국 대신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가고, 나에게 집중하다 소외되고 매몰됐던 눈빛들은 하나 둘 해체되자 타자에게 향하고, “살려야 했던” 가치와 이념 대신 생명을 존중하고 혐오를 중단하는 풍경들로 돌아간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처럼. 세상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돌아가리라고 믿으며. 잔상(殘像)으로 남은 죽음의 공포 앞에 오히려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품은 채 이념과 가치가 다르지만 정미홍 씨의 마지막 그 말이 새벽녘, 아무 일 없기를 바랬던 마음에 남았다. 물론 그의 “부질없는 일”은 박근혜 석방이라는 이념 자체를 거부했던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태극기 집회를 의미하지 않았으리라 안도하는 이들의 무리를 보며, 다음의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다 부질없는 일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