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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

 

“하하하!”


정확히 세 번 하!하!하! 예, 아니오도 아니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란다. 누가 취재한 걸까. 그 소식통 줘 패야 돼. 또 나만 바보 됐어. 힝.


“마지막 날 상고장 제출하면서 조마조마했어요. 또 마음 바뀌는 건 아닐까…. 간혹 인선 자료 떠돌아도 틀릴 때 많아요. 결국 오늘 1면에 제 이름만 안 실린 것처럼요. 데스크는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안도했다. 그럼 그렇지 이렇게 착한 사람이 누가 누굴 이용해 먹어? 지금 당장은 김지수 공판 준비하느라 정신없을 뿐이고 대통령 당선하기 전부터 몇 번 만나본 사이일 뿐이라고. 국민의 악마를 변호하는 사람을 자기 대변인으로 뽑을 리 있겠냐던 말에서 황당해진 건 나였다. 당연히 그렇지. 신문사 들어가고 나서부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고 살아서 당연한 소리에도 훅 넘어가버렸다.


“지수도 절 필요로 하는 사람이니까요. 변호사로서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저도 너님이 필요해요.’


라는 생각을 말로 내뱉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수임료도 받지 않았다는데 그럼 그 필요란 뭘까. 한때 사람들에게 사랑 받았던 그때의 감정을 독려해주는 유일한 사람? 모든 사람은 욕할지라도 악마까지도 변호해 줄 단 한 사람의 응원?


“근데 왜 데스크 사람들이랑 밥 드신 거예요?”


라는 말을 생각 필터에 거치지 않고서 내뱉었다.


아, 음, 아. 그건……. 보기 드문 추임새. 변호사님도 감추는 게 있었을까.


“돈 버는 사람들이니까요.”


변호사님 비유가 필터 없이 귀에 들어왔다. 제3막으로 구성한 한 사람의 인생 뮤지컬. 학생 때부터 꿈꾸어 온 미래를 향하여 정신없이 달려가는 소녀로서의 1막. 가장 아름답고 짜릿해야 했건만 현실의 벽 앞에 거칠게 쓰러지고 맞서 싸우는 현재로서의 2막. 덤덤하게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삶을 정리하고 주변을 지켜만 보아가는 과거로서의 3막. 빠르게 재편되어가는 사회, 바뀌어가는 직업, 쉴 새 없는 출근길, 변해가는 가족, 조금씩 삐걱대는 몸과 마음. 사람의 봄여름가을겨울 저무는 계절 속에서 고작 돈 때문에 죽어가는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속삭임에 말을 잇지 못했다.


“둘로 찢어진 상고장보다도 눈가에 고인 듯한 눈물이 저를 필요로 한다는 걸 말해줬어요. 말은 필요 없다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걸…….”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누군가를 무시하며 살아간다. 반대로 자존감이 필요 이상으로 높을 땐 자의식이 과잉되어 누군가를 숨 막히게 만든다. 학벌과 돈, 명예. 모든 것은 자신을 치장하는 액세사리에 불과하다. 자유의새노래, 라는 1등 신문사의 명예도 누군가를 무시하고 숨 막히게 만드는 매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변호사 배지에도 이 남자와 같이 있을 때면 느낀다. 숲처럼 정화되는 맑은 햇살. 높고 낮음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존중해주는 밝고 맑은 자존감. 확실히, 확실히 ENFJ 같아. MBTI 같은 건 안 믿겠지?


“정론직필의 자유란 사실 신문이 살아남기 위한 구호겠죠. 누군가 아버지의 밥벌이로 보일 때면 조금은 다르게 보일 거예요.”


하나도 안 부럽다. 멋들어지게 치장한 자기 자신이 대단하게 보일지는 모르겠다. 근데 내 눈엔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돈 벌기 위해 몸뚱아리 돈으로 쳐 바르기 위해 안달 난 사람들.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이라기엔 비참했다. 1등 신문사 만들어 놓고도 순수했던 그때의 자신을 잃어버리는 기분이란 무엇일까. 그런 지수가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죽음을 목전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남자와 만나면 왠지 어두워 보이는 그늘을 조금이나마 밝혀줄 수 있을까. 어렵게 취업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으, 말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