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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에셀라 시론

[에셀라 시론] 영산 조용기를 애도한다

 


힘없이 복음성가 1장을 부르는 조용기 목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마음에서 슬픔이 몰려왔다. 우리에겐, 한국교회에는 더 이상 존경할 만한 인물이 없으며 이제 곧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선 것이다. 순복음 신학을 떠날 무렵 조용기 목사는 주일 4부 예배를 통해 입씨름을 이어갔다. 누가 더 헌금을 많이 내었는지를 겨루자는 말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 ‘한 때는 존경했던’ 수식도 이 무렵 생겼다. 누군가의 죽음은 흑과 백을 상징하건만 영산 조용기를 생각하면 그리움과 아쉬움만 남는다. 한 때 존경했던 영산 조용기는 대조동 천막교회에서 다섯 명의 교인으로 80만 교인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시킨 인물임과 동시에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로 교회 사유화 문제를 일으킨 존재이기도 하다. 공(功)과 과(過) 사이에 무엇을 먼저 언급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모르는 것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어른이다. 한국교회에는 더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위주의 시대를 살아갔던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는 어른이 주도하여 세상을 정리하고 질서를 꾸려갔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한반도임에도 그 시대의 운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한 때 한국교회 대표 기구이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둘러싼 문제들도 어른의 부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돈에 의해 세워졌다가 돈에 의해 무너지는 한국교회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 현재의 상황에서 빈자리 어른들의 차가움이 느껴진다. ‘대형교회와 웰빙보수주의’를 저술한 김진호 신학자의 글을 보면 놀랄 만한 구절이 나온다. 아버지 학교를 거론하며 다시 가부장제를 세워야 한다는 골자 속에서 퇴행적 자의식으로 묘사한 신학자의 단어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어른이 다시 애로 돌아가는 기분이 어떨지 상상해 보았다. 울면 안 된다고 가르치던 어른들의 냉대함에 감정부터 무너지며 복구하기 힘들 지경으로 해체되는 사회 분위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 조용기라는 어른을 덮어준 것은 신학교 교수였다. 강의를 듣던 반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비판하던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었다. 교수의 주장은 단순했다. 희망의 복음을 전파했다는 이유가 영산의 과를 덮을 수 있다는 취지였다. 일방적인 마이크에 반론을 펴지 않았다. 퇴행적 자의식을 아로새기며 내 안의 존재를 되짚었다.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되물은 것이다.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교회 교인들을 우민(愚民)으로 만든 잘못을 잊을 수 없었다. 번영신학은 둘째 문제다. 어긋난 삼위일체론, 무속신앙과 다르지 않는 교회론, 그러면서도 무속신앙을 비판하는 왜곡된 샤머니즘, 성장에 눈이 멀어 행사장에 교인까지도 움직여야 했던 동원 체제.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거론하며 자기 주장 펼치는 전광훈을 바라보며 퇴행적 자의식으로 들어찬 한국 개신교회 상황에 잘못이 없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음성가 1장을 힘없이 부르는 영산 앞에 밀려온 서글픔도 이 맥락이다. 더는 한국교회에 쓴소리 할 만한 어른이 없다는 현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경험하며 슬퍼한다
복음성가 부르던
영산의 목소리 앞
서글프게 보이는
한국교회 안녕을
나지막이 묻는다


권위주의가 답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그렇다 한들 질서가 필요없다는 말도 아니다. 대통령조차 재앙으로 희롱당하는 시대에 모든 권위는 무너지고 물처럼 흐르고 만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고, 명분도 없으니 없는 권위를 세워 자의식으로 가득 찬 꼰대만 눈에 밟힌다. 그 꼰대가 주일예배 설교단에서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거론했다. 부지(敷地)를 팔아 2,000억 차익(差益)을 얻었음에도 코로나19 시기에 대면예배 대신 온라인 예배를 진행했으니 벌어진 일로 나열한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처참했다. 내세울 수 있는 거라곤 자신의 과잉된 자의식, 퇴행된 자의식뿐이면서 세계 최대 교회를 대면예배 중인 자신의 교회에 비교하는 알량한 자존심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물었다. 당신은 사회에 기억될 만한 인간이냐고.

기독교의 교리대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면 모든 어른도 죄인 중에 하나일 수밖에 없듯 영산도 사람이었고 평범한 인간으로 60년을 목회한 존재일 것이다. 그 영산에게 손을 흔들며 아이돌을 바라보듯 인사해준 여성 교인들이 선명하다. 오명(汚名)을 내보이며 진심 어린 회개를 요구했던 교회 장로들도 보인다. 한국교회에 영산만큼 흑과 백이 선명한 인물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 비치는 눈동자엔 조용기의 밝은 면만 보인다. 그마저도 어두움을 강조했던 참여교회의 목사도 자신의 밝음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어른을 이용하여 자기 하고 싶은 논변으로 늘여놓는 것도 모자라 어두움조차 보지 않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현실이 자명해진다. 쓴소리할 만한 어른 하나 없는 교회, 그저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 1980년대 지극히 한국적인 한국만의 현상을 기대하는 퇴행적 자의식 속에서 누가 교회로 몸을 돌리고 싶겠는가.

빈자리로 가득한 여의도 순복음교회 대성전을 바라보며 언제 모를 영산의 빈자리를 잊지 않기 위해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힘없이 한 문장, 한 단어 읊조리며 설교의 말미로 향하는 당신의 또렷한 뒷모습을 보았다. 이제 더는 당신의 설교를 들을 수 없기에, 그 때의 희망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래서 어른으로 성숙해야만 하는 지금의 쓰라림 속에서 과거사를 묻는다. 한국교회는 시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제대로 묻지 않으면 바꿀 수 없다. 판을 다시 짜야 하는 수준이다. 누가 과연 용기를 내어 질문할 것인가. 그래서 한 때 존경했던 영산을 기억하고 애도한다. 그리고 신 죽음의 시대에서 한국교회의 안녕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