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순복음교회는 돔 예배당만이 전부가 아니다. 매 일요일 국회대로 가득 메운 인파 속을 헤집고 예배당에 도착해 남는 시간 주보를 읽노라면 오늘 설교 할 조용기 목사 설교 제목이 가장 눈에 띈다. 사회자의 시편 낭독. 손을 휘 저으며 찬송가 부르는 지휘자. 10분 남짓한 장로님 기도. 성경봉독, 성가대의 찬송 순서가 지나 예배는 하이라이트에 다다른다.
“옆에 계신 분들에게 ‘주님의 복을 받으십시오’ 인사해주십시오.”
이제 등단한 조용기 목사가 “제게도 축복해주세요”를 덧붙이면 교인들은 두 손 가리키고서 박수를 친다. 언젠가는 이 부탁을 빠트렸고 교인들이 조 목사를 향해 손짓과 함께 축복하자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도 잊어버렸는데 여러분이 기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용기 목사는 중학생이 들어도 이해하기 쉬운 말들로 설교를 이어갔다. 과감한 어투와 가벼운 농담도 섞은 덕분에 딱딱하지 않다. “‘나는 적은 죄 지었고 너는 많은 죄 지었다.’ 죄는 다 똑같은 죄인 것입니다. 작은 돌멩이도 물에 가라앉고 큰 바위도 물에 가라앉는 것입니다. 그저 소리가 다를 따름입니다. 작은 돌맹이는 ‘퐁당’하고 가라앉고 큰 돌맹이는 ‘푸응덩~’하고 가라앉는 것입니다.”(2008. 06.22 잃어버렸다가 찾았으며 죽었다가 살아남) 교인들은 조 목사의 ‘퐁당’과 ‘푸응덩~’ 두 단어에 박장대소한다. 죄와 인간 그리고 하나님의 관계를 이처럼 쉽게 설명해주는 설교에 감탄한다.
예수쟁이더러 미쳤다고 말하던 소년 조용기는 오히려 예수를 전하는 목사가 되었다
조용기 목사의 설교는 언제 들어도 익숙하다. 크게 소리 지르지 않는다. 쓸데없이 시간만 길지 않는다. 예화와 통계 인용은 우리 사회에서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돕는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3요한1,2)하신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의 모든 일들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바라는 설교로 이루어진다. 누군가는 ‘번영신학’으로 비판하지만 조 목사를 뒷받침하는 생애를 들여다보면 근원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조용기는 폐결핵을 앓으며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하나님도 혼자 바닥에 누워 통곡하던 조용기의 기도를 들었는지 누나의 친구를 통해 예수를 접한다. “예수쟁이들은 다 미쳤다 카드마, 누이도 예수 믿고서 미쳤구마. 당장 이 방에서 나가이소.”(여의도의 목회자,165쪽) 다시 찾아온 누나 친구가 건네준 성경책을 읽으며 조용기는 병을 고쳐달라고 호소한다. “예수 씨여!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나의 폐병을 고칠 수 있는 당신입니더. 의사들은 아무도 내를 고칠 수 없다고 말합니더. 그러나 성경을 보마 예수 씨는 중풍병자도 고치고, 앉은뱅이도 일으키고, 나병환자도 깨끗하게 하고, 죽은 나사로도 살려 주지 않았심니꺼. 만약 예수 씨가 내를 고쳐주신다카마 예수 씨를 위한 사람이 되겠심더. 제발 나를 살려 주이소.”(여의도,169)
가슴이 뛰고 온몸이 뜨거워졌다고 한다. 마음속에서부터 생명의 기운이 넘치자 조용기는 신이 나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찬송가를 모르던 시절 아는 노래라곤 ‘신라의 달밤’뿐이었다. 마당을 돌면서 노래를 부르니 어머니도 드디어 정신이 나간 줄로 오해했다. 병 고치는 예수의 활동을 통해 조용기는 병 고치는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다. “한 절 읽다가 눈물 흘리고 다시 한 절 읽다가 눈물 흘리고 하니까 온종일 성경을 읽어도 다섯 절 이상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성경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고 기뻤습니다.”(여의도,171)
사흘 밤낮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동안 예수는 조용기에게 찾아와 “복음을 전하는 데 너의 일생을 바치라”고 말한다.(여의도,194) 예수의 다리를 안으며 정신을 잃은 조용기는 환상을 통해 폐결핵이 나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본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조용기에게 고치시는 예수, 살리는 복음이 누구보다 살에 와 닿았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목사가 된 조용기는 설교한다. “육군 대위 한 사람이 암에 걸려서 죽어가는데 그 아내가 하도 사정해서 병원에 심방 가서 전도를 했습니다. ‘나는 안 믿습니다! 육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당당한 군인이오, 군인 정신으로 죽겠습니다.’ 군인 정신이 천당 보내 줍디까? 당신 당당한 군인정신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죽음 앞에는 군인도 장사가 아닙니다. 죽음을 당신 이길 수 있습니까? ‘나는 사관학교 출신으로서 군인으로서 살다가 군인으로서 죽지 시시하게 예수 믿고 죽지 않겠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시시합니까? 용감한 사람만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로 자기 스스로가 어떠한 처지에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이 용감한 사람인 것입니다.”(2008.06.22)
역설
“예수 씨여! 살려 주이소”
예수쟁이라고 말하던 소년
목사가 되어 예수를 말한다
고난
석유파동으로 찾아온 위기
믿음과 희망 가지고 돌파
고난 통해 神 만난 조 목사
유지
순복음 신앙의 핵심은 성령
‘유지하기’ 통해 번영 추구
역사상 전무후무 교회 이룩
고난 중에서 만나는 하나님
대조동에서 단 다섯 명 교인으로 시작한 교회는 순복음중앙회관에서 순복음중앙교회로 이어졌다. 300명 교인은 1968년, 8000명으로 늘어났다. 1만명이 동시에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하나님은 조용기 목사에게 “이곳을 떠나 만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성전을 지어라. 그곳에서 너는 500명 선교사를 파송하게 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여의도,442) 위기는 거대한 예배당을 지으며 시작됐다.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공사가 멈춘 것이다.
위기는 가장 나약한 이에게서 발휘된다. “목사님, 나 마이크로 말 좀 할 수 있게 해주세요.” 80대 할머니가 놋밥그릇을 꺼내며 “여러분, 이러다 우리 목사님 죽어요. 밤낮 우리가 이곳에 모여서 기도만 하면 뭐합니까? 우리 가진 것 다 털어서 교회 건축에 쓰라고 헌금합시다.”(여의도,455) 교인들은 특별 헌금을 작정했고, 5000만원을 융자해주겠다는 한 은행 지점장까지 나타나자 공사가 재개됐다. 이같은 고난 내러티브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와 조용기 목사의 신학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나를 위해서 주님께서 얼마나 크신 사랑을 베풀었다는 것을 만남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만나야 돼요. 이야기만 듣고 지나가면 안 돼요. 나와 일대일로 만나야 돼요. 십자가 밑에 엎드려 내가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돼요. 날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을 봐야 해요. 우리가 아닌 것입니다. 전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나 한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2007. 10.28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하나님은 인간의 고난을 통해 자신을 현현(顯現)한다. 따라서 질병과 고통, 정신의 문제 상황은 일시적인 것이며 이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며 육체의 문제도 해결되는 삼중축복을 강조한다. 삼중축복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중복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난 없이는 순복음 신학과 조용기 신학을 이해할 수 없다.
‘신앙하기’와 ‘유지하기’
고난을 이겨내어도 끝이 아니다. 광활한 신앙생활이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순복음 신학 특유의 ‘유지하기’가 발동된다. 여기에서 성령충만이 등장한다. 조용기 목사는 번영으로써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몸소 보여주었다. 세계 최대 교회는 한국교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성과다. 거대한 예배당 돔만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조용기 목사의 일생도 세계 최대 교인 수 역시 전부가 아니다. 서른 살도 안 되는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1962)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총회장으로 피선(1966)됐고 하나님의성회 극동아시아대회를 서대문교회에서 개최(1969)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 조용기는 이미 세계적인 시각으로 활약했다. 지금의 여의도 교회에서 세계오순절대회를 개최(1973)했고 국제교회성장연구원(CGI)을 창설해(1976) 본격적인 세계 선교에 힘을 쓴다.
그런 하나님이 인간에게 징계를 주기도 한다. “어릴 때 잘못하면 어머니가 부지깽이로 때렸는데 여러 번 맞다가 보니까 점점 체험으로 지혜가 생겨서 도망을 치니까 부지깽이 끝에 맞으니까 몹시 아프더라고요. 때릴 때 어머니를 안고 뒹구니까 부지깽이 안으로 맞으니까 아픈 척하지만은 실제로 안 아파요. 그래서 어머니를 끌어안고 ‘아이고 내 죽네’ 고함을 치면 실제로 안 아픈데도 어머니는 심히 아픈 줄 알고 때리는 걸 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때릴 때는 멀리 달아나지 말고 어머니를 끌어안아야 돼요. 하나님이 때릴 때는 하나님을 끌어안아야 돼요. 하나님을 떠나서 자꾸 도망치면 무지무지하게 아프고 고통스러운 징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2007.12.02 징계)
새천년을 맞이하고 한국교회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여의도 순복음교회도 집중 조명된다. MBC 시사프로그램 뉴스 후는 조 목사가 교회 돈으로 재산을 증식한 과정을 보도했다.(2007.03.24) 조용기는 다음 날 주일 2부예배에서 ‘긍정만이 사는 길이다’를 설교했다. 2011년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2017년 교회에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17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판결 받았다.
코로나19 발병 이후에는 설교를 직접 듣지 못했다. 2020년 7월 뇌출혈로 인해 ‘예수님과 강도’가 마지막 설교로 남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는 강대상에 서지 못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찾았다. 마스크를 낀 채 2-3m 간격을 유지하며 조문 온 교인들로 북적였다. 조화(弔花) 문구를 하나하나 읽던 할머니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가슴이 먹먹했다. 한 시대의 저무는 역광이 강렬했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교복 빨래를 하면서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기독교 세계를 완전히 벗어난 지금에서까지도 듣곤 한다. 뼛속까지 오순절의 피가 흐르는 지금의 시대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어제의 기적이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이제 더는 조용기 목사가 겉옷을 던져가며 “나는 죄인이다. 나는 못 났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안 된다. 나는 패배자다. 하는 이 부정적인 생각이 거지 바디메오의 의복같이 나를 가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주님께 기도하고 난 다음에는 이 마음 속의 정죄의식 죄의식 패배의식 부정적인 생각을 벗어서 내어 던져버리고 주님께로 나아가야만 되는 것입니다”(1981.02.25 겉옷을 벗어 버리고)라고 말한 것처럼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조용기 이후의 시대, 신 죽음의 시대 이후 앞에 길이 놓여 있다. 한번도 걷지 못한 길일 테지만 조용기가 개척하여 걸어간 것처럼. 보이지 않은 답을 찾아가며 긍정의 희망을 품고 한걸음 내딛어야 할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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