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도서

빈 공간 되어버린 동네에서 사라진 수지를 찾는 소년:『편의점 가는 기분』

편의점 가는 기분
박영란 지음 | 창비 | 236쪽 | 1만2000원

 

사람이 몇 없는 동네란 낯설다. 귀신이 살 것 같거나 나쁜 사람들이 숨었다는 낯섦보다 사람의 온기로 가득했던 이곳이 한 순간 싸늘한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감정이 두렵게 만든다.

 

항동 철길 거닐기 위해 천왕역에서 나오자 머잖아 낯선 풍경과 마주했다. 접근금지 팻말 좌우로 빨갛고 하얀 무늬 띠들로 가득했다. 흰 종이에 쓰인 문장에는 재개발로 시작하는 내용이 보였다. 철제문이 사라진 빈 출입구엔 거미줄까지 가로 막았다. 며칠 전만해도 어린이가 등교할 것만 같은 풍경에서 낯선 감정을 느꼈다. 한 두 건물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집근처 슈퍼마켓, 상가 건물, 원룸도 같았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주인공 소년의 시야에 담긴 구지구(舊地區)는 어땠을까. 어떤 두려운 낯선 공간이었을지 상상했다. 신지구라는 마계 건물 덕분에 구지구로 전락한 지금, 소년은 가난과 함께 구지구에 남았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소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편의점 일 뿐이다. 아버지를 대신한 외할아버지의 사업적 결단이 없었다면 이 일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수지마저 사라졌다.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소년이 수지를 찾아 헤맨다. 수지를 찾기 위해 마주치는 구지구 사람들과의 섬세한 관계가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이 수지를 찾아야 한다는, 꼭 찾았으면 하는 바램마저 잊어버리게 만든다. 이 소설 마지막에 이르렀을 땐 수지를 찾았는지 여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게 된다. 어느새 마음 속 여민, 소년의 마음과 잔잔한 독백이 누구보다 수지를 아끼고 사랑했음이 드러나 가슴 애틋해진다.

 

가난을 낯설게 생각지 않고, 상처가 아닌 이미 떼려야 뗄 수 없는 자각 속에서 묵묵히 견디어내는 소년이 어른으로 보였다. 다리 저는 수지를 좋아하는 애틋함도 어른보다 더 어른다움이 아닐까. 햇빛도 들지 않는 삼호연립 지하 102호 수지가 뒹굴던 퀭한 바닥, 누워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수지를 생각하는 소년을 그릴 때마다. 사랑하니까 기억하고, 사랑하니까 아낀다는 말을 가늠해본다.

 

 

관련 글 보기

[이야기 꿰매며] 퇴행적 자의식 속 어른에게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