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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일과속기록

[일과속기록] 작은 거인과 ‘문장의 힘’

자유의새노래 2024. 10. 1. 22:00

 
선배의 다급한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학부 3학년임에도 수습기자부터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페이스북 메시지에는 절절한 사정이 담겨 있었다. ‘오죽하면 나 같은 사람까지도 필요하단 말인가’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보사는 학생실천처장과 정치적 싸움에서 밀리던 상황이었다. 지원이 끊겼고 인쇄비마저 없어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거절했다. 대학원 진학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진학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2010년 침신대학보는 이사회와 싸움을 벌여야 했다. 한 구약학 교수를 지키려고 학보사가 나선 것이다. 이사회는 자유주의 신학과 학력위조라는 핑계로 재임용에 반대했다. 이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기자들은 붓을 들었다. 사실을 그대로 보도하려 했다. 그러나 편집의 손길은 끝내 톱기사를 킬(kill)했고 딱 그 부분만 백지로 발행되고 말았다. 2년의 군 휴학. 다시 돌아온 학교에 이미 학보는 사라진 상태였다. 동기와 후배들에게 물었다. 학생실천처장과의 다툼 때문이란다. 직접 학보사에 265호를 요청했다.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뼈만 앙상한, 아래아 한글로 겨우 조판한 흔적이 역력했다. 탄식이 흘러나왔다.

현실은 가혹했다. 정치적인 싸움보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학생들의 무관심이었다. 아무도 학보를 읽지 않았다. 글조차 기고하지 않은 환경이 신문을 옥죄기 시작했다. 동료와 후배들은 학보사에 가입하려던 나에게 쓴소리를 남겼다. “학보사 애들은 사상이 이상해” “맞춤법도 안 지키는 애들” “좌파 사상에 빠진 것들” 박근혜 탄핵이라는 거대한 국민적 사건 앞에 자기 살길 찾느라 바빴던 것이다. 그리고 이사회 파행이라는 전례 없는 사태가 오래도록 벌어졌다. 총장 직무대행을 둘러싸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소문만 무성했다.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다루는 이 하나 없었다. 침신대학보의 빈 자리가 크게만 느껴졌다.
 
 
사라지는 우리의 담론장
그래서 내어주는 새 지면
거센 파고와 폭풍우에도
부서지지 않을 너의 문장
 

지금도 상상해 본다. 학보사에서 일했더라면. 부족한 일손을 도왔더라면. 수습기자가 어렵다면 내 가진 편집 실력으로 신문이라도 만들어 볼걸. 처음 공적인 신문을 내 손으로 만들어 봤더라면. 대학을 졸업하고도 유일한 후회로 남았다. 지면신문이 사라지는 시대에 도달했다. 신문 열독률은 10%대로 떨어진지 오래다. 보는 시간 ‘30초’로 따지면 피부에 더 와닿을 것이다. 가짜 뉴스가 영상 매체를 통해 침투하고 있다. 대국민 공론장은 광고와 잡담, 농담 따먹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학보사의 기억이 떠오른 이유가 있다. 며칠 전 나는 작가에게 이 신문 자유의새노래 원고를 청탁했기 때문이다. 답변이 늦을 줄 알았다. 아니 거절당할 줄 알았다. 수습기자를 청탁 받던 그때의 나는 선배를 통해 완곡하게 거절했기에 그래서 업보로 돌아올 줄 알았다. 돌아온 건 생글한 답변이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원고 청탁을 받겠습니다.” 작가에게 부탁한 것은 한 가지다. 쓰고 싶은 글을 쓰라는 것. 작가의 글에서 완벽히 어그러진 것 같으나 그 어그러짐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했으므로.

청소년 문학소설 ‘완벽한 사과는 없다’에서 주인공 지민이 다온과 리하를 바라보며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지만 힘이 될 문장을 짓는다.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나는, 우리는, 무력하지 않다.(……) 가늘지만 질긴, 쉽게 구부러지지만 부서지지는 않을, 지팡이처럼 디딜 수 있는 문장이었다’(93,3)

사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안다. 불완전해 보이는 작가의 문장이 폭풍우를 견디게 할 가장 단단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가장 약한 지면으로 발화하는 작은 거인의 목소리가 이 세상을 견딜 수 있게 해 주리라는 것을. 인류의 마음에 천착하는 이의 노력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