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7. 03 | 수정 : 2020. 07. 03 | 디지털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니고데모를 떠올린 배경은 꽤나 복잡했다. 요한복음서에 등장하는 니고데모는 다른 공관복음서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위치의 캐릭터다. 그렇게 8장에서 18장까지, 열 장을 거쳐 등장하지 않던 그가 등장한 배경은 이제 막 예수의 시신이 십자가에 내려오던 금요일 오후였다.
예수와 가깝게 지내온 니고데모가 찾아온 그 날 밤도, 그 밤들 중 하나였고 어쩌면 밤하늘과 함께 예수의 제자들 사이에 가려진 인물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밤하늘과 함께 그의 얼굴이 가려졌다. 니고데모의 얼굴도, 사랑하던 제자의 온기도, 베드로의 낯빛도, 유다의 그늘도.
예수는 자신의 제자에게 저주를 받던 그 밤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진리를 잃었다(요한 8,32, 10,14). 잃어버린 진리를 앞에 서 두고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깊어가는 그 밤들 사이로 들어가 더욱 눈물을 훔친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그 밤들, 슬픔과 기억이 혼재되어 영원히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아픔 속으로 들어간다.
엔도가 바라보던 예수의 뒷모습에서 유다를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가서 네가 할 일을 이루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를 밟아도 좋다고 말한 것처럼 유다에게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이루라고 말했던 것이다. 네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을 테니까.”
엔도 슈사쿠, 『침묵』, 홍성사, 공문혜(역), 2005.07.29,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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