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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

[사설] 7년 허망한 캐릭터의 죽음

눌러 적은 지면을 통해 밝히고 싶었으나 밝히지 못한 말들이 많았을 것이다. 지지자들 향하여 고맙다” “사랑한다는 표현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여름 밤 꿈처럼 사라진 수없는 박수와 실루엣 앞에서 공허감을 느끼는 이유도 분명할 것이다. 성숙이란 이름이 허울뿐인 회유에 불과했고 젊음이란 청춘도 한 순간이란 점에서 허탈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누구든지 대중에게 사랑 받고 알려지길 바라는 욕망을 가진다. 한 번쯤은 꿈꿔볼 만한, 청년이라면 당연히 상상해 보아야 할 거창한 명분 앞엔 성숙이란 단어가 서 있는다. 성숙을 대단한 단어처럼 내세운 자는 어른들이었다. 계약서 사이에 보이잖게 명분으로 내세운 약속에는 기만과 공상이 숨어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사막여우의 말을 비틀어 자신이 이루고자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내세웠다.

 

그 욕망을 알아차리지 못한 이들은 달려갔다. 1등으로, 1등을 위해, 1등을 축복하며 계약서 도장 마르기도 전에 오징어게임에 편승했다. 1등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성숙이란 단어 뒤에 숨은 개인의 욕망을 지지자에게 투영했다. 여론조작과 다르잖은 집단 움직임에 눈을 감았다. 1등 만들기에 합류한 이들을 내 사람으로 생각했고 내 사람만 챙겼다. 1등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관계도 사이도 무너졌다. 그리고 모두가 탈락했다.

 

성숙의 종말은 1등 논리에 편승하면서부터다. 함께한 추억이 우선이라면 왜 좌절하는가. 왜 여론조작에 눈을 감는가. 1등을 바라고 1등을 축복하는가. 자기 자신을 잃고 사람들을 잃는데도 1등이 무슨 소용인가. 허위사실과 여론조작으로 패대기쳐졌던 자기 자신에게 미안하지도 않은가. 부끄러운 줄 모르던 이 오징어게임이 끝나서야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성숙이란 단어에 숨은 기만을 깨닫고 투영된 자신을 바라보자 지지자들조차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이름도 남지 않은 헛된 욕망을 알아차리고서 허영의 세계를 벗어났다.

 

성숙이란 이름으로 탈을 쓴 어른들의 욕망이 또 다른 청년의 죽음을 낳았다. 이름조차 불리지 못하는 죽음들은 더욱이 상품을 위한 회유란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현실에 눈을 뜬 이들이 좌절하는 이유도 가장 중요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숨긴 어른들의 욕망 때문이다. 그 욕망의 희생자는 청년뿐만 아니라는 점에서 가볍지 않다. 구약성서에서 야곱이 기만 당했던 7년의 세월은 지금의 시대와 결이 다르다. 따라서 망해야 할 것은 망해야 한다. 존재 존립이 어려운 공상의 것들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1등을 축복하고 1등이 되기를 바라는 세계에선 도무지 새로운 게 등장할 수 없다. 기존의 지지자를 끌어안는다 한들 게임에서 탈락한 이들이 살아 돌아 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