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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자유의새노래 칼럼

전두환 시대의 부장

 

 

혼자서 한겨레와 조선일보 읽던 토요일 점심이었다. 다짜고짜 내 어깨를 치면서 부르는 손짓을 느꼈다. “다시는 도서관에 오지 마라”는 협박과 함께 문장 사이에는 욕설이 섞였다. 두 해 지나서야 발붙이지 못했던 도서관을 어렵게 오고갔고 추운 겨울 박근혜 탄핵을 맞이했다. 지금도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번갈아 읽던 20대 청년에게 입에 담기 어려운 말로 협박한 그 인간이 선명하다. 86세대라 불리는 전두환 세대와 첫 인연이다.


복학하면서 다양한 86세대 사람들을 만났다. 부동산 업자로 살아가다 은퇴한 장로님.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다 잘 풀리지 않은 집사님. 자기 말론 기타치고 방탕하게 살다가 기독교로 귀의한 전도사님. 후배들이 인사 안한다고 찡찡대던 투잡 전도사님.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거하게 대접해준 권사님. 졸업하고도 마주쳤다. 편의점, 버스, 도서관, 횡단보도, 안 보이는 데가 없었다. 회사에까지도 부장 타이틀 달고 앉아 있는 상사까지.


86세대를 대하면서 한 가지 알아차렸다. 그들 연배가 되어도 인터넷을 할 줄 알고 청년들 유행어 두어 개 알아 듣기도 하며 섬세한 사회 감정을 읽을 줄 아는 감각이 선명하다는 사실. 나이 60줄 되어 임원에게 까이고 사원에게 치인다는 불편한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는 점도 알았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참고 견딘다는 사실도 보았다. 신체 부위 고장나지만 않는다면 몸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고 때로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커뮤니티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과 다르게 86세대라고 다 잘 먹고 잘 사는 건 아니었다. 부동산업으로 은퇴하고도 하루 10만원씩 써도 다 쓰지 못하는 장로님 같은 분이 있는가하면 그 장로님 눈치 보면서 전도사 생활하는 분도 있다. 두 세 차례 짜장면에 탕수육 베풀어주신 권사님은 돈만 벌다 여생 가는 삶이 아쉬워서 나 같은 탈 기독교인에게도 사랑을 베푸는 분도 있었다. 임원과 사원에게 까인다던 부장 뒷자리 상사는 무선이어폰 귀에 걸고 남들 일하는 자리에서 소리만 지르는 고작 1살 동생일 뿐이다.


다채로운 풍경 속에서 또 다른 86세대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그 시절 돈 모아서 집 한 채 안 가지고 있잖아? 그런 인간들은 한심해.” 대물림이 생각났다.


지난 12월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 2020~2070년’을 보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나온다. 2040년이면 65세 인구가 34.4%로 2020년에 비해 18.7포인트 증가하고 2070년이면 46.4%로 12%포인트 증가한다. 30년이 지나서 지금의 20대가 65세 이상의 노인으로 불릴 시기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때 되면 전두환 시대의 부장도 전후 세대도 희미해질 것이다. 다수가 된 지금의 청년들이 나이 들어 부동산과 직업을 내세우며 예민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한번 뿐인 인생인데 정답게 살아갈 순 없는 걸까. 한겨레 좀 본다고 욕이나 내뱉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