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갑작스러웠다. 여자친구네 집으로 달려갔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약 3시간이 걸렸다. 도착한 건 저녁 늦은 시간이었다. 여자친구는 혼자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떡볶이를 같이 먹으며 악몽 같았던 직장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여자친구를 끌어안고 단잠을 잤다. 나를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개운한 마음으로 새 아침을 열었다. 직장에 간 여자친구를 두고 집에서는 글을 썼다. 한동안 밀린 일기와 기사를 써 내려갔다. 하고 싶은 일을 리스트로 정리했다. 여자친구와 주말에 놀러 갈 장소들도 적어 두었다. 오후에는 스타벅스에 들렀다. 개인 작업을 진행했다. 여자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회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자친구 손잡으며 퇴근하는 길이 가벼웠다.
여자친구는 요리를 할 줄 안다. 조리 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여자친구의 조수가 되었다. “셰프”라고 부르며 요리를 도운 것이다. 감자를 씻고 양파를 손질하고 두부를 잘랐다. 김치찌개부터 된장찌개, 카레와 유부초밥, 김밥과 뭇국도 끓였고 묵사발과 파스타도 만들어 먹었다. 어제는 대패삼겹살에 양념을 만들어 부었더니 꽤 괜찮은 대패삼겹살 제육볶음이 되었다. 피곤한 날이면 배달음식도 시켜 먹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주말에는 여자친구와 근교나 먼 거리로 여행을 떠났다. 전주 한옥마을도 다녀왔고 대전 성심당도 놀러 갔다. 가장 기억에 남은 여행은 고창 상하농원이다. 평일에는 여자친구가 일을 마치면 전남대 후문까지 산책 나가곤 했다. 뜨거운 여름에는 결국 아이스크림 사러 5분 거리 마트 다녀온 게 전부지만 말이다. 집안일은 언제나 나의 몫이다. 여자친구가 맛있게 요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으니 설거지만큼은 내가 하고 싶었다. 청소기도 밀었고 가끔은 방도 닦았다. 밤이 되면 샤워를 했다. 몹시 개운했다.
직장 생활하던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전혀 다른 쉼이었다. 여자친구의 집은 내 집보다 쾌적하다. 높은 층에 살고 있기에 노을을 볼 수 있다. 바람도 잘 분다. 에어컨도 정속형이 아니라 하루 종일 틀어도 된다. 그 무엇보다 여자친구가 살고 있기에 나는 하루를 충만하게 지낼 수 있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혼자 지냈더라면 어땠을까. 밥은 어찌어찌 챙겨 먹었어도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여자친구네는 작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환경이다. 듀얼 모니터도 없고 그 좋던 컴퓨터조차 없다. 맥북 하나가 전부다. 신문과 동영상 모두 맥북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한눈팔지 않게 되었다. 절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여자친구가 일하는 동안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세 달이 지났을 때, 일하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다시 치열하게 살고 싶어졌다. 힘들게 살았음에도 또 신문을 만들고 싶다니. 그런 내가 밉지 않았다. 그런 나를 사랑해 주는 여자친구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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