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일 만에 돌아온 게임… 그리고 유일한 온라인 교회
“여호와 닛시! 버뮤다 순복음교회입니다.”
2022년 9월 3일 토요일. 다시 버뮤다순복음교회 문이 열렸다. 6년만이다. 온라인 교회가 생소한 퍼피레드 단원(회원)들이 감탄을 쏟았다. “교회 진짜 잘 꾸미셨네요!” “손에 쥐났겠다” “추천” 고마운 마음에 반갑다는 인사와 함께 말했다. “이곳 버뮤다순복음교회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른 종교인도 환영합니다. 편히 쉬다 가세요.”
버뮤다순복음교회는 올해 17주년을 맞는다. 퍼피레드가 지난달 30일 모바일로 다시 살아나면서 교회도 같은 모습으로 부활했다. 버뮤다순복음교회는 퍼피레드 뿐만 아니라 온라인 게임 통틀어 종교 활동까지 선보인 유일한 교회다. 문을 열자마자 미니파크는 순식간에 단원들로 가득 찼다. 퍼피레드는 한 계정 당 두 개 미니파크를 제공한다. 미니파크는 일종의 땅이다. 가입만하면 기본 집과 땅, 침대 등 아이템을 준다. 버뮤다순복음교회는 집 대신 예배당을 지은 것이다.
퍼피레드(puppyred)
2003년 11월 출시한 육성·커뮤니티 게임이다. 모바일 게임 시장의 부상과 오류·버그·영업 악화 문제로 2016년 8월 서버 종료했다. 이후 오픈 메타버스 플랫폼 회사 컬러버스가 퍼피레드를 모바일 버전으로 제작해 문을 열었다. 버뮤다순복음교회는 퍼피레드 게임 속 온라인 교회로 올해 17주년을 맞는다.
“예배는 언제 하나요” “교회 결혼식 해주세요” 질문이 쏟아졌다. “아, 예배는 드리지 않고요. 지금은 교회 터만 있습니다.” “결혼식은 고려해보겠습니다(꾸벅)” 나는 버뮤다순복음교회에서 11년가량 교회 운영직인 ‘말씀지기’로 살아왔다. 처음엔 스스로 목사라고 칭하기도 했다. 초등학생 시절이라 신학대학원 졸업과 전도사 고시까지 봐야 겨우 목사 자격이 주어지는 줄 모르던 탓이다. 고등학생이 되고부터 목사 대신 말씀지기라고 불러 달라 부탁한 게 ‘말씀지기’의 시초다.
◇생소한 온라인 교회에 감탄과 농담, 진지한 기도가 묻어난 토요일 밤
처음엔 사람들이 왜 안 들어오나 궁금했다. ‘파티파티’를 열어도 한 분 찾아오는 사람 없었다. 이상한 걸 느꼈다. 미니파크 설정에서 ‘파크 비공개’에 체크된 걸 확인하자 웃어 버렸다. 다시 ‘파티파티’를 열었다. 그제야 사람들이 물밀 듯 들어왔다. 퍼피레드는 한 미니파크 당 동시 접속자 수가 정해져 있다. 최소 2명에서 많으면 30명으로 교회는 총 24명까지 접속 가능하다. 최대 인원까지 꽉 찰만큼 교회는 인기가 폭발했다. 찜질방, 학교, 도서관, 숲, 클럽도 아닌 교회라니. 흔하지 않은 콘셉트라 낯선 교회 모습에 찾아온 단원들 얼굴에 감탄이 가득했다.
뜬금없이 예배당 한 가운데서 은혜성가를 부르는 사람이 보였다.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내게 강 같은 평화~” 은혜성가에조차 없는 최신 CCM도 보였다. “이곳에 생명샘 솟아나 눈물 골짝 지나갈 때에” 웃음은 채팅으로 방언하는 단원에서 터졌다. “랄랄ㄹ라랄랄ㄹ랄…” 다 OCN 드라마 ‘구해줘’ 때문이다. 교회를 구경하던 단원들도 황당한 웃음을 뿜었다. 첫날이라 제지하지는 않았다. 이 모든 풍경이 생경하고 신기해서 벌어진 느낌이라 즐겁기만 했다.
10년 전엔 대성전에서 예배도 드렸다. 주일예배부터 수요예배, 금요예배, 토요기도회 등 일주일만 아홉 차례 예배를 집도(執導)했다. 그러나 퍼피레드가 서버 종료하던 같은 해 8월 23일 버뮤다순복음교회를 해체했다.
첫째, 버뮤다순복음교회와 그 외 지교회·교회 기관을 해체하겠습니다.
둘째, 버뮤다순복음교회 해체 이후 그 비슷한 단체나 공동체를 설립하지 않을 것입니다.
셋째, 버뮤다순복음교회의 역사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종교 활동을 금지할만한 초법적 근거다. “그간 버뮤다 순복음교회가 이해와 신학을 추구하였는지 반성하게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인정한 색 바랜 버뮤다 순복음교회 해체 선언문은 버뮤다 순복음교회의 구조와 체제가 로버트 팩스턴의 지적처럼 전체주의였음을 실감하게 합니다.”(2017.08.23; 버뮤다순복음교회 해체 1주기 추념사)
시끄러워진 탓에 어느 단원이 나직이 한 말씀 남겼다. “기도하는 분들 생각해서 조용히 해주세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강대상에 올라와 자기가 신이라고 장난치는 사람이 거슬렸다. “이곳 버뮤다순복음교회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개신교 풍자도 좋지만 타인을 해하는 말이나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은 자제해 주십시오.” 그렇다. 이곳은 기도하는 곳이다.
모바일 게임으로 돌아온 퍼피레드
2016년 서버 종료하고서
우여곡절 끝에 정식 출시
6년 만에 복원한 온라인 대성전
올해 17주년 맞이한 교회
“잘 꾸미셨네요!” “추천”
방문객의 교회 풍자에 笑
기도·찬양엔 함께 하기도
그 시절 동훈, 다윗, 창휘님도 돌아왔다
옛날의 교회가 복구되니 추억이 새록새록
“손에 쥐났겠다.”
쥐가 나기는커녕 짜증만 난 기억뿐이다. 컴퓨터로 짓던 조작방법이 모바일에서 어려워진 탓이다. 운영진이 퍼피레드조차 해보지 않고 만든 게 아닐까. 참고 견디며 의자를 배치하다보니 나름의 방법을 터득했다. 기존 180석 가량 교회 규모는 237석으로 늘었다. 이전보다 규모가 커진 덕분이다.
PC게임 시절 퍼피레드는 아이템 배치 개수에 350개 제한을 두었다. 지금은 마음껏 둘 수 있다. 버뮤다순복음교회는 퍼피레드 정식 출시 하루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총 3일에 걸쳐 완성됐다. 복원은 끝났지만 공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지어야 할 교회 부속 장소와 기관이 많기 때문이다.
◇기존 퍼피레드와 미묘하게 다른 아이템 배치
퍼피레드는 2016년까지 PC게임이었다. 컬러버스 이용수 대표가 모바일 게임으로 제작에 나섰다. 이조차 우여곡절 연속이었다. 게임 개발이란 어려운 일인가보다. 2020년 모바일 퍼피레드 개발에 돛을 올린지 두 해 지나 겨우 손에 닿았다. 그마저도 정식 출시 당일 로그인조차 못했지만 말이다. 오류와 버그가 넘쳤다. 운영진도 당황했다. 단원들은 불만이 폭발했다. 아이템 배치가 주 콘텐츠인 퍼피레드 이름에 흠집이 났다. 의자 하나하나 심을 때마다 욕을 내뱉었다. 힘들게 만든 교회였다.
화가 난 나머지 에트기억연구소 블로그에 쓴 소리 남겼다.
“아이템 범위를 얼마나 대충 만들었으면 이미 촘촘하게 배치된 아이템 하나 꼭 집어 선택하질 못해요” “다행스러운 건 그룹으로 묶어서 아이템 배치할 수 있는 점인데 이건 위에 레이어 비유로 든 아이템 선택 불가한 현상 때문에 장점이 희석 돼 버렸습니다” 아이템 배치도 문제지만 발열(發熱)도 문제였다. 2018년 9월부터 사용한 노트9으로 게임하기에는 몹시 뜨거웠다. “퍼피레드는 슈팅·레이싱 게임과 다르게 시간에 제한이 없고 대결 구도도 없기에 오래하는 게 인지상정인 게임입니다. 발열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애시당초 기기를 잘못 설정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원들의 원성 때문이었을까. 퍼피레드 운영진은 업데이트에 나섰다. 이후 발열은 나아진 듯했다. 의자 237석을 세워 둔 후라 아이템 배치도 문제될 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바뀌어야 할 부분으로 남았다.
◇그대로 복원한 교회 건물에 새롭게 해석한 기능
버뮤다순복음교회 대성전은 크게 대예배실과 집무실, 기도실로 구분한다. 아이템 배치 개수 350개 제한 때문에 두 가지 기능만 존재했다. 복원한 교회 건물에 여러 기능을 추가했다.
❶1층에는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강의실을 마련했다. 남은 부지에는 로비도 만들 예정이다. ❷2층은 대성전과 사무동으로 분리된다. 앞으로 신문사 자유의새노래 독자서비스센터로 활용할 계획이다. 교회가 신문사에 일종의 임대를 내준 셈이다. ❸3층은 교회 사무실이다. 말씀지기인 내 집무실과 창휘 형제 자리로 마련했다. 유아, 어린 아이와 동시에 예배할 수 있는 모자실도 마련했다. 이외 성별에 따른 화장실도 마련했다. 기존 퍼피레드에는 존재하지 않던 교회 건물의 새 기능인 것이다. 아이템 배치 개수에 제한이 없는 덕분이다. 대신 게임이 느려지는 건 느낌적 느낌일까.
여전히 지어야 할 공간이 많다. 기도실도 만들어야 하고 성가대실을 비롯해 접견실, 향후 결혼식·학술발표회 같은 행사 대기 공간, 거주 공간, 방송실, 소예배실 등 본격적인 공사는 이제 시작이다. 덕분에 버뮤다순복음교회는 복합 문화공간이 되고 말았다. 백화점 같이 거대한 건물로 변모한 것이다.
모자란 게임 복원에 분노
①기존과 다른 겹쳐짓기 모드
②손 데일만한 발열과 최적화
복원한 교회에 추가한 공간
①로비·대성전·강의실·카페
②本紙용 독자서비스센터
③말씀지기와 창휘 집무실
④화장실과 부엌 새로 마련
퍼피레드, 미묘한 다름 속에서
다시 만난 동훈·창휘·다윗
교회 팸으로 함께한 10년
예배 기능 없는 교회 통해
새로운 빛줄기 내딛고 싶어
◇똑같이 복원한 교회에서 실감한 퍼피레드 부활 그리고 ‘가능성’
6년 전 PC 퍼피레드 시절 버뮤다순복음교회를 기억해준 단원이 많았다.
“혹시 예전 퍼피에서도 이 교회 만드셨나요?” “제 어릴 때도 왔어요. 기도하고 가고 그랬어요” “다시 이렇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네요 ㅠ”
아이템은 같았지만 짓고 보니 확실히 달랐다. 그래픽부터 달리 느껴졌다. 같은 캐릭터라도 그림자부터 손목 굵기까지 미묘한 다름을 내보였다. 어리숙한 교회 의자에 앉았다. 어색한 십자가를 바라보자 짜증은 온데간데없었다. 밀려온 그리움에서 믿을 수 없다는 감정·감격·감동이 밀려왔다.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퍼피레드가 부활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어울릴지 모르겠다. 물론 다시 배치모드로 바꾸는 순간 짜증이 튀어나왔지만 하여튼 침묵 속 교회에서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대성전을 짓고 나서 보니 어제의 선 넘은 비판 글(링크)이 떠올랐다.
“오늘은 순탄하게 예배당 복구에 마쳤습니다. 버뮤다 순복음교회 해체 선언문처럼, 이제 더는 퍼피레드 교회라는 형식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배당 터를 남겨두고 집필 활동 이어갈 생각입니다”
버뮤다순복음교회는 2016년 8월 23일 해체했다.(링크) 더는 교회 공동체를 설립하지 않기로 해 예배당 터만 남겨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결혼식이 그렇다. 2009년 새해 첫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었던 결혼식을 다시 이곳 버뮤다순복음교회에서 보고 싶었다.
학술대회는 어떨까. 꼭 기독교 건물을 빌려야만 하는 걸까. 온라인 교회도 충분히 건물을 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창조적인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짜릿한 기분을 느꼈다.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나 많다니. 방송국 체계도 갖추고 싶었다. 자세한 건 앞으로 보여줄 테다.
“안녕하세요. et님 오랜만입니다 ㅎㅎ”
동훈님이다. 6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동지. 퍼피레드 교회성장연구소에서 활약한 창휘님도 함께 방문했다. 어젯밤 카톡으로 퍼피레드 부활 소식을 전한 덕분이다. 머지않아 지교회를 운영했던 다윗님도 만났다. 모두 10년 넘은 우정을 함께한 이들이다. 푸른좋은교회 팸으로 연결된 동지를 만나자 퍼피레드 부활이 실감 난다.
퍼피레드는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도전을 건넨다. 한 발자국 조금씩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빛 한줄기 내딛고 싶은 용기가 샘솟는다. 미니파크처럼 만들어 갈, 우리네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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