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 이 신문은 PC버전의 퍼피레드가 서버를 종료하기 직전 걸출한 회원 한 분을 인터뷰 했습니다. 두 시간 이어진 대화는 화기애애했습니다. 대화의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퍼피레드만한 게임은 없구나” 이 진부한 교훈 하나. 그분은 말미에 이런 말을 하더군요. “서버 종료 공지 보고 사비와 재능기부로 유지됐다는 말에 찡했고….” 그랬던 그가 시간이 흘러 돌연 운영진을 비난하는 위치에 서 있더군요.
그분의 시간은 2019년 12월 1일에 멈춰선 듯 했습니다. ‘퍼피레드 같은 게임’의 개발이 중단된 날입니다. 퍼피레드 운영진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신물이 난다는 듯 행동하는 점을 미뤄보면 트라우마로 남은 건 아닌지 싶을 지경이더군요. 저는 조금 의아했습니다. 퍼피레드에 자산을 투자한 투자자도 아닐 테고, 그렇다고 펀딩에 참여한 게이머도 아닐 테고요. 하다 못해 퍼피레드M을 해 본 사람도 아닌데 말이죠.
한편으론 이해가 됐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하던 게임이 개발되려던 차, 판권을 가진 운영자가 나타나 퍼피레드를 모바일 버전으로 만들겠다고 나섰으니. 마치 자신의 기억을 빼앗긴 것만 같은 설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퍼피레드 같은 게임’의 개발이 돌연 중단된 진짜 이유는 운영자가 나타났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개발자에게 이유와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회원들은 퍼피레드 같은 게임할 기회를 아쉬워했습니다.
퍼피레드 모바일조차 문을 닫은 후 저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악에 받쳐 운영진을 저주하는 사람, 둘째는 소중한 기억 고이 품고서 아름다운 추억과 더불어 사는 사람.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많은 듯합니다만 순간 의문이 들었습니다. 게임이 뭐길래 저렇게까지 악다구니를 품고 사는 걸까. 묻지 않을 수 없더군요. ‘게임이 사라진 지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상흔을 들어내 놓고 사는 사람들의 심리는 뭘까’하고 말이죠.
사실 이 신문과 인터뷰를 했던 분은, 누구보다도 여론조작에 힘을 쓰던 사람이었습니다. 개발자가 유명해지길 바란다며 유튜브 조회수를 올리자면서 자동재생 방법을 퍼뜨렸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컬러버스의 홍보성 기사를 두고 불만을 터뜨리다니요. 저는 게임 퍼피레드가 개발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두 파벌의 무의미한 싸움을 말없이 지켜보았습니다. 소모적인 갈등과 흐려지는 논법을 바라보며 다짐했습니다. ‘게임 개발 과정을 보도하는 건 지면 낭비’라고 말이죠.
모두가 알다시피 퍼피레드는 마이너한 게임입니다. 구글에다가 ‘인기 게임 순위’를 검색해보시면 압니다. 퍼피레드가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요. 그럼에도 개발에 나선 퍼피레드M은 1년을 조금 넘겨서야 서버를 종료했습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추억에 대고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어야 했다”며 이를 가는 사람들의 심리는 배신감일까요, 아니면 풀리지 않는 인생에 대한 불안함일까요. 그러니 아름다움의 여신이여, 이제는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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