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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혜

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찝찝하고 불쾌하다 못해 쓸쓸하고 아득한 빗방울 방학이 끝나든 뭐든 간에 시궁창 같은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며칠 전에 읽은 신문 칼럼이 떠올랐다. “돈 많은 사람들이 다 똑똑한 건 아닌 것처럼, 똑똑한 사람들이 다 돈만 좇는 건 아니다 (……) 오스카 와일드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 살지만, 몇몇은 별을 바라보는 법. 그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이 글을 읽을 때만 해도 추운 겨울이었는데 어느덧 미세먼지가 나도는 봄 초입에 들어섰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삶은 여전히 시궁창. 절망 그 잡채. 터벌터벌 오늘도 어김없이 발걸음은 서대문역에 다다르고, 정말 정말 회사에 가기 싫은 나머지 늦든 말든 스벅에서 화이트초콜릿모카를 시키고 자리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그러나 피할 수는 없었다. 돈은 벌어야 했으니까. 먹고는 살아야 .. 2024. 3. 4. 16:22 더보기
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떠난 네 등 돌아보지 않은 이유 나 스스로를 더 사랑하라느니, 자존감 챙겨야 한다느니 같잖은 소리 허공에 붕 뜬 채로 눈 녹듯 사라졌다. 그런 말장난들은 현실 앞에 서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뿐이다. 사랑한다던 말도 그랬다. 촉이라는 걸 느꼈기에. 애써 외면하려던 결과가 허무감으로 돌변할 때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을 온몸으로 맞닥뜨려야 했다. 날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생각했던 그 애가 보고 싶지 않았으므로. 온갖 명분 끌어다가 필요할 때만 찾는 걜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지만 외로움 따위 견뎌내기 어려워서 다시금 입술에 담는 내가 미웠다. 따라서 외로움은 견디기 어려운 과정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경험할만한 그런 것, 인간이라면 언제든지 속절없이 견뎌야 하는 것. 딱 그쯤으로만 생각했다. 내 앞에 퍼지는 물결을 감내해가며 흔들리.. 2022. 10. 12. 00:33 더보기
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동태 눈깔에게 이별 통보 받은 밤 굳은 입술의 동태 눈깔. 교회 일에 치여 완벽하게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만이 되어지는 눈빛. 세상의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던 가르침과 다르게 살아온 이중 잣대. 그리고 철저히 정직하게 살아낼 수 없어 월급으로만 사는 무능력한 직장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현실의 벽 앞에 선 자만의 눈망울. 며칠 전만 해도 입술과 입술을 맞대어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그 입술에 만큼은 생기가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헤어지자.” 안색 하나 변하는 것 없었다. 그럴 줄 알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조금씩 가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서울대 남자랑 만나니까 좋아?” 내 소식통. 두 달 전부터 서울대 출신 성악과 한 여자와 전임자가 만난다는.. 2021. 8. 7. 23:35 더보기
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위로 남의 집 냄새는 언제나 맡아도 낯설다. 남자친구 작은 원룸 나서던 순간까지도 홀아비 냄새가 익지를 못했다. 낯설다는 풍경이 내게 가져다준 불편함은 너에게 내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직감으로 깨닫게 만드는 감정이다. 어머니가 출근하고 빈 현호의 집에도 낯선 냄새가 가득했다. 순전히 현호의 냄새뿐이었다. 아기자기 알록달록 쿠션 위 가족사진과 식탁처럼 보이는 공간에 누가 봐도 현호가 만든 걸로 보이는 나무 모형이 옹기종기 항해할 요량을 갖추었다. 늦점심이 되어서야 베란다 앞으로 져가는 햇빛이 외로운 저녁으로 들어가는 현호의 마음을 그리는 것 같았다. 가방을 내려놓고 소파에 앉아서 생각했다. 무어라 말해주어야 할지, 어떤 말로 놀라지 않게 다가갈지, 혹시나 싫어하지는 않을지. 무릎에 팔꿈치를 올려두고 손가락을 .. 2021. 5. 24. 22:28 더보기
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창세기 설화: 분노(憤怒) ‘왜 요즘 교회에 안 나와요?’ 이렇게 물어볼 때마다 뜻밖의 대답을 마주한다. 모순. 교회에서 가르치는 가치와 사회에서 생활하며 부딪치는 모순 앞에 쓰러지는 청년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온다. 돌아오지 않을 당신에게 정직한 답변으로 돌려드리지 못한 부끄러움이 그렇게 만든다. 일요일 저녁이면 업무를 마치고 어깨에 몸을 기댄다. 이제는 누가 들어오든 아랑곳 하지 않는다. 끝 보지 못했던 카톡 심방*을 이어간다. 나른해진 동공에도 엄지손가락 움직임이 끊이질 않자 스마트폰 낚아챈 동료가 묻는다. *심방(尋訪) 교회의 교직자가 교인에게 연락과 방문을 통하여 안부를 묻고 신앙 상태를 점검하는 일. “안 쉴 거야?” 아직도 안 끝났는걸. 계속해서 일만한다고 어떻게 잊혀지겠어 나도 모르진 않는데 좀 쉬엄쉬엄 해 걱정.. 2021. 5. 2. 19:05 더보기
[지애문학] 창세기 설화: 음욕(淫慾) 비공개 기사입니다. 2021. 5. 2. 19:00 더보기
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기억을 기억하는 이유 각이진 턱에서 돋아나는 입가의 주름 그 입에서 쏟아지는 무책임한 단어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했다. “얼마만이죠?” “그러게요. 마주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요. 호호.” 새신자환영회실 지나쳐 곧바로 12교구 담당 전도사와 바쁘게 걷는 걸 특권처럼 생각하던 이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도착한 상담실에선 그 여러 해 동안의 회포가 이어졌다. “이 교회 저 교회 전전하고 교구장까지 해봐도, 우리 교회 만하지는 않더만. 시설 좋지, 목사님 좋지, 성도들 좋지, 분위기 어때, 신앙심도 이만한 데가 없다고.” “네.”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힐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표정을 잘 안다. 살짝 고개를 기울어 다문 윗입술로 아랫입술 닫아줄 때 발생하는 무표정. 마구 휘갈겨 적는 종이 위엔 정자로 인쇄된 교적 전입처.. 2021. 4. 7. 21:06 더보기
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일탈 입력 : 2021. 01. 17 22:53 | A29 “나 주 안에 늘 기쁘다/나 주 안에 늘 기쁘다/주 나와 늘 동행하시니/나 주 안에 늘 기쁘다” 예배당 바깥으로 나갔어도 귀에서 낭낭하게 들려왔다. 설교를 마치고 부르는 찬송가 멜로디가 내일 아침에도 허밍으로 울릴 걸 생각하면 역겹기 그지없다. 3층 방송실에서 바라본 교인들 뒷모습은 흥에 겨워 어깨춤추고도 남았다.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속마음을 드러낼 때면 감정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내 모습이 보인다. 심방을 싫어한 이유다. 한 바탕 손뼉치고 열광적인 찬송을 부르면 스트레스 해소될 테니, 종교도 하나의 비즈니스 서비스다.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담배 한 까치라도 피우며 속이라도 비웠을 텐데. 여긴 그럴 만한 옥상도 없었다. 사방이 아파트로 둘러싸인 감시 받.. 2021. 1. 17. 22:53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