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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객관적상관물

살아있음을 말해주는 새벽의 여명

입력 : 2019. 07. 02 | 수정 : 2019. 07. 02 | 디지털판

 

새벽 4시 56분이 되자 밝아진 하늘에 마치 노을 진 저녁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사진 속 하늘은 새벽이다(2013. 7. 3).

 

교회로 향하는 길목의 침묵(2013. 7. 3).

새벽 예배를 위해 교회로 향하는 길목, 누구를 위한 새벽 예배 인지 고민하는 순간이다(2013. 7. 3). 신학 전공자 어깨 위에 지운 짐처럼. 마르틴 루터도, 길선주도 새벽 예배 드렸다는 부담감에 목회자는 전교인 특별 새벽 예배란 행사로 또 다시 짐을 지운다.


그러나 예수는 침묵과 조용함 속에서 하느님을 찾았다. 주여 삼창과 같은 떼창과 요란한 새벽 예배를 주님께서는 요구하지도, 바라지도 않으셨다. 네 아버지의 은밀한 곳에서의 기도(마태 6,6)는 무엇인가. 한국 교회는 그러한 기도를 하고 있는가.

 

침묵 속에서 예수는 죽음으로 향했다. 인간을 만든 신이 인간을 위해 죽는다는 역설적 십자가 속에서 그는 침묵했다. 자신의 존재를 향해 외치지도 않았으며, 무(無)를 향해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침묵 속에서 자신의 죽음을 실현했고,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구했다. 지금도 그 때의 새벽 여명을 바라보는 이유엔, 예수의 죽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