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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지애문학

[지애문학] 하고 싶다고 진짜

본문의 사진 속 장소는 이 글·본지 편집 방향과 무관합니다.

 

아이고, 우리 진유! 하고서 반겨주실 줄 알았다. 같은 교회 다니는 집사님을 엄마 앞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정돈 해봤지만 이렇게 급작스레 마주할 줄은 몰랐다. 교복 입은 시절 성실하게 교회 오가다가 대학 진학과 함께 쓸려나간 이후 한 번도 뵙지를 못했다. 그렇게 10년, 나보다 작은 키에 여전히 적당하게 자글자글한 주름살 건조한 눈매 푸석한 입술. 한복 곱게 차려입고서 생기롭게 주보 건네던 분위기만 달랐을 뿐 분명히 정겨운 얼굴을 뵈니 마음은 즐거웠다.

예뻐졌다는 말에서부터 어른다워졌다, 결혼할 나이잖느냐는 말까지 기어이 무슨 일하고 있다며 말하기 전까진 식은땀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정수기 물 한잔 겨우 마실 수 있었다.

“저어기 자유의새노래 편집국에서 일하고 있어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니라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와따매, 집사님은 자랑도 않으셨다만 좋은 데라서 입 꾹 닫고 있었고만.”

“허허 망해가는 신문인데요.”

엄마의 팔을 때리는 바람에 성적도 잘 안 나와서 백수 생활 몇 년 하던 내용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1등 신문사에 사원으로 일하는 것. 거기엔 기자들이 유출되어 부수(部數) 조작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닥 쓸모없었다.

“네, 새로 디지털 업무 시스템을 도입해서요, 저 같은 디자이너들도 뽑아주고 있대요. 가며는 프로그램으로 지면신문을 편집하는데요. 사설도 여러 번 바뀌거든요. 그거 갈아주고 들어온 일러스트도 배치하고….”

“햐, 뭐 지금 시대에 취업이라도 하면 어디겠니?”

마스크를 잠시 벗어다가 방울토마토 집어넣는 모습에서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이제 내가 할 말은 다 끝났으므로.

익숙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오는 동안, 엄마 옆에 앉아서 조용히 바깥을 내다봤다. 아…. 다함께교회. 나의 비극적인 시대가 담긴 동네. 건물 하나 믿고 많은 것들이 오가던 공간. 거기에 묶여버린 나의 사랑도 지금까지 찾아가질 못했다. 낳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만으로도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다. 귀엽고 착하게 생겨서 자빠트리고 싶은 그 남자를 만나던 날들.

학생들이 주도해서 만든 24클럽에도 자발적으로 들어간 이유도 사실은 오빠랑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어서였다. 스물네 살까지 혼전순결 지키면서 신앙생활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에 오빠를 넘어뜨리려고 들어간 내 죄책이 커선지, 먼저 오빠를 남의 여자에게 빼앗겨 버리는 비극을 맞이하고 재수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것도 하느님 뜻이니 뭐니 지껄이는 게 역겨워서 나오고 말았지만.

실은 말하고 싶어서 간질간질 했지만 참아야만 했다. 어차피 오래전 일이고 스물네 살까지 지켜낸 것도 없으니까. 그냥 우연히 페북에서 결혼해가지고 잘 먹고 잘 산다는 얘기만 알고 있는 터라 만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제 와서 좋아했다는 말이 무슨 소용일까. 싶을 테지만 다 늙은 아저씨들 사이에서 이거 넣고 저거 빼라 말 듣기보다 더 늙기 전에 더 나이 들기 전에 너랑 한번이라도 연애하고 싶다는 그 말 한마디 꺼내고 싶었다. 개신교회는 왜 고해성사가 없는 걸까.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붙잡고 싶던 욕망은 엄마의 짜증나는 소리 때문에 화면보호기마냥 깨지고 말았다.

“진유가 좋아하던 그 목사님은 잘 있나 몰라. 목사님 있으면 교회라도 나갈 텐데…….”

입술을 깨물고 때리는 시늉을 하면서 화기애애한 풍경이 연출 됐지만 마음으로는 울었다. 사모님으로 살아갈 바에야 외로워도 지금이 더 낫지 않겠냐고. 그래도 넘어뜨렸어야, 하 이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