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점심이면 회사 근처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예쁜 길과 달리 속설은 지독합니다. 연인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소문 때문입니다. 2018년 영국대사관으로 연결된 100m와 70m 거리가 모두 개방되면서 그저 옛말에 불과하게 됐습니다. 또 지독한 점이 있습니다. 평일 낮, 하도 사람이 많아 걷기 거북할 지경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향신문사 앞부터 덕수궁 돌담길을 거쳐 서울시청에 이르기까지 왕복 3㎞를 걷습니다.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돌담길과 시청 앞 광장은 언제나 다채로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버스 운행과 관련해 시위를 벌이는 민주노총과 윤석열 대통령을 지키자고 외치는 태극기든 시민까지…. 그러다 연령과 지역별로 다 모인 듯 길목에서 애국심 가득한 노인을 보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 앞에 서서 커다란 태극기를 휘저으며 애국가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인 제 눈에는 그저 아스팔트 우파 시민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달리 보였습니다. ‘아, 저 분은 애국심 가득한 행위예술가시구나.’
3년 전 여름 저는 아픈 사랑을 끝내야만 했습니다.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습니다. 걷고 또 걸었습니다. 한 바퀴, 두 바퀴, 걸으며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마음이 단단해졌을 때 깨달았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 다가올 때면, 언제든 몸을 움직여야 하는 구나’하고 말이죠. 얼마나 마음이 괴로웠으면, 이 나라의 충정을 생각해 시청 앞 광장까지 달려왔을까요. 얼마나 살고 싶었으면 서소문 청사 앞 데시벨을 키워 민중가요를 틀고 있을까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괴로울 때면 행위예술가가 되어 버립니다.
김초엽 작가 단편소설집 ‘행성어 서점’ 속 ‘선인장 끌어안기’에는 접촉증후군에 시달리는 유능한 건축가 주인공 파히라 이야기가 나옵니다. 같은 증후군에 시달리는 어린 나이의 소영을 만나지만 얼마 안 있어 죽고 맙니다. 끝내 파히라는 자신의 집 가구를 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선인장을 끌어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병원에 실려갑니다. 파히라는 과거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사랑일까, 아니면 고통을 견디는 것이 사랑일까 (……) 그때 나는 불행히도 나에게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어.” 그리고 여름, 두 번의 이별을 맞이했습니다. 마음이 단단해진 덕분일까요. 두 번 모두, 덕수궁 돌담길과 얽힌 사랑이란 걸 알아도 저는 늘 돌담길 너머로 산책합니다.
때로는 아플 때도 있고, 아픔이 감쇄되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못 견딜 만큼 아파지다가도 그러면서도 발견한 한줄기 빛 앞에서 경이를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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