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 12. 13 | 수정 : 2018. 12. 13 | C3
비교해 본 神과 아이돌
유일신 사상과 아이돌은 닮은 구석이 있다.
그야 지금 세상에 어느 누가 자기 아이돌만 최고라고 말하겠나. 교회조차 유일하신 하느님도 상투어에 불과하게 된 계기엔 ‘내가 있으니 너도 있다’는 논리 때문이지 않을까. 하나의 신만을 믿어야 하듯, 하나의 아이돌만 아끼는 건 아니다. 유독 모든 멤버를 사랑해야 진짜 팬이라던 이들을 향해 뻗친 일갈도 있으니 말이다. 새로운 아이돌과 함께 우르르 몰려가는 동안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한 팬도 있다. 배타성. 집단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도구다.
배타성에 질린 이들은 내터티브(narrative) 전략을 구사했다. 아이돌을 만나 행복해진 내 삶. 신을 만나 달라진 내 삶. 각자가 경험한 신의 존재가 이야기를 통해 구사되었고, 때론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배타성 전략에 비해 비난할 근거가 없다. 아이돌, 혹은 유일신을 통해 삶이 변화되었다는 가슴 애린 절절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과 아이돌이 같다면 누구든지 건네주는 공감에 하나가 되곤 한다.
그렇지만 유일신 사상과 아이돌은 만들어진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닌다.
만들어진 아이돌, 만들어진 신
‘만들어진 존재’라고 해서 공상이나 허언을 말하는 게 아니다. 둘 모두 좋아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존재’를 들여다보고 싶다.
아이돌은 만들어진 존재다. 회사는 A&R팀이 미리 정해둔 ‘아이돌’을 찾아다닌다. 오디션도 열고 직접 발탁도 한다. 그렇게 찾아진 이들은 연습생이 된다. 아이돌을 넘어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회사와 계약을 체결한다. 회사는 전폭으로 지원한다. 멤버들이 음반 개념이나 색채, 자신들의 이미지를 A&R에 맡긴다. 멤버들이 A&R과 상의하는 경우는 참 드물다.
A&R(Artist and Repertoire)
아이돌 콘셉트 결정, 뮤직비디오, 앨범 미술 작업 등의 역할을 가진 소속사 내 부서 및 팀이다. 규모가 작은 소속사의 경우 개인 단위로 맡기도 한다.
유일신도 마찬가지다. 신앙인은 유일신을 만나보거나 들어보거나 느껴본 적 없지만 그를 믿는다. 계약서처럼 체결된 성서(text)만이 신 존재의 근거다. 아이돌이 회사에 의해 상품으로 가공되듯 신 역시 성서를 통해 가공된다. ‘성경대로 믿는다’는 말이 가진 폭력을 안다면 유일신도 해석되어 만들어진 신이라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상품화 된 아이돌은 팬덤에 따라 소비되거나 덜 소비된다. 유일신도 교인들이 몰려들수록 소비되거나 덜 소비된다. 팬덤과 교인이 아이돌과 신을 소비하는 주체라면 회사와 교회는 신을 소비하도록 도와주는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음반 매출을 위해 팬 사인회 규칙을 정하는 것과 기도회를 위시한 공식적 종교 활동을 여는 데엔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소비되는 신, 소비되는 아이돌
이제껏 신과 아이돌을 구분해 두었지만 실은 다르지 않다. 아이돌이 신이냐고 건넨다면 할 말은 없다. 다만 현대인에게 신은 더 이상 능력을 행사하거나 기적을 보여줄 존재가 아닌 나약한 인간과 함께하는 유일신이라는 점에서 아이돌과 동질하다는 의미다.
회사와 교회는 아이돌의 삶과 신의 움직임을 상품화하기 바쁘다. 봄은 특별새벽예배, 여름은 수련회, 가을은 추수감사절, 겨울은 성탄절. 예수의 정신을 담은 성물, 꿋꿋이 이름을 버리지 않은 찬양팀, 유명한 목사님. 교인들은 신이 무엇을 하는지 어떤 역사를 벌이는지 궁금해 한다. 유독 동성애와 북한 소식에 따라 종말론이 소비되는 이유다.
채널플러스를 위시한 기획사가 “오늘 뭐 했냐”란 질문과 함께 일상을 판매한다. 외형을 물건으로 만들고 시즌그리팅으로 포장해 굿즈란 이름으로 내 걸기도 한다. 달력, 포토카드, 포스터. 팬 사인회를 위해 서른 장의 앨범을 쌓아둔 팬은 라이트한 수준이다. 이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잖은가. 심지어 음악방송에 밀착한 이들이 찍은 사진도 뒷거래 될 정도다.
신과 아이돌은 돈이 되는 모양이다.
아이돌도, 신도 만들어진 존재… 소비되는 논리 서로 같아
집단으로 등장한 팬덤, 목소리 크기 아닌 존재 해석이어야
남은 건 무한 존재 긍정
팬덤과 회사, 그리고 교회와 교인 입장에서 자신들의 세계가 커지면 좋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유명해진다는데 마다할 팬이 어디에 있나. 교회 입장에선 입이 벌어진다. 시장이 넓어져야 배불러 질 테니. 열심히 스밍도 하고, 총공도 하고. 예배 스트리밍도 구축하고, 십자가 대신 대형 LED도 달아본다.
스트리밍(streaming), 총공격(總攻擊)
음악 혹은 동영상 파일을 저장하여 재생하지 않고 연결 된 인터넷으로 실시간 재생을 의미한다. 팬덤에서 스밍이란 차트 상승을 위해 끊임없이 재생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팬덤이 특정 시간에 음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투표 등 직접 참여하는 개념인 총공은 순위 상승을 위한 집단적 움직임이다.
팬덤이 몸집을 불리며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커뮤니티에서 의견을 개진하며 아이돌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름 날릴 기회를 논의한다. 응원도 한다. 인터넷 기사에 몰려 이곳저곳을 오간다. 누군가 외치는 비추, 누군가 소리치는 댓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합법화라는 논리로 소문이 카카오톡을 누빈다. 누군가 외치는 반대, 누군가 소리치는 아멘. 주님은 골방에서 기도하라(마태 6,6) 했지만, “모여 있다”는 대중이 교인들을 압도하고 만다.
아이돌을 유일신과 같다고 주장함에는 집단성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 누구든 자기 아이돌의 유일함을 대놓고 말하진 않는다. 유일신을 주장하는 건 교회 내에서뿐이지 개인의 목소리는 흩어지고 만다. 흩어진 목소리를 모을 방법이 하나 있는데, 집단의 목소리다.
집단의 목소리가 지시하는 건 존재 긍정이다. 아이돌과 신이 만들어진 존재임에도 만들어진 이미지를 긍정한다. 존재 긍정이 뭐가 문제냐고 묻는다. 맞다, 존재 긍정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존재 긍정 하나만으론 문제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만들어진 존재도 그렇다. 우리는 아이돌을 다 알 수 없다. 부분적으로 보이는 모습에 감탄할 뿐이다. 바울도 하느님을 부분적으로 안다고 지적했다(1코린 13,12).
신은 완벽하지만 성서는 완벽하지 않다. 아이돌은 완벽하지만 인간 유지애는 완벽하지 않다. 탈덕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집단의 목소리는 완벽해 보인다. 성서무오가 여전히 소비되는 이유이며, 팬덤 간 싸움이 유효한 이유기도 하다.
내가 믿는, 내가 신앙하는 아이돌을 해하는 자는 적으로 보인다. 실제 그 적이 존재한다. 현대판 종교전쟁은 팬덤 갈등이 아닐까.
현실 극복과 신 존재의 재해석
아이돌을 좋아하는 이유엔 음악과 삶, 혹은 외모가 존재한다. 사람마다 미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인에게 유일신도 그렇다. 병도 고치고 축복도 해주는 기복이 주된 논거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타락의 정점을 보여준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신앙의 이유를 묻는다면, 더는 다른 신보다 뛰어난 우월함을 논하지 않는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신 존재.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건 뛰어난 병 고침과 축복이 아닌. 시내산에서 함께한 야훼의 임재뿐이다(탈출 33,13-14).
아이돌도 그렇다. 기복적 신 양식처럼 우월성이 들어설 근거가 없다. 그저 아이돌을 사랑하기 때문에 팬이 된 거지 1등 걸그룹이기 때문에, 탄탄한 팬덤을 유지한 보이그룹이기에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듯이.
왜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왜 유일신을 신앙하는지 묻는다면. 괴로운 현실을 극복할 새로운 빛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빛은 결코 대중이란 이미지로 강화되지 않는다. 제 2이사야에서 저자가 패망을 도덕 문제로 돌리려 함에도 이러한 배경이 깔려 있다. 전쟁으로 신 존재를 드러낸 고대문학과 달리 야훼는 창조주(이사 43,1-7; 45,9-13)로 등장했다.
불에 타 사라진 예루살렘을 보며 이스라엘 공동체는 패망을 신의 죽음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머지않아 고레스 칙령과 함께 해방된 이들은 창조전승으로 신 존재를 논했다. 패망은, 공동체가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은 악함 때문이지 야훼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만들어진 존재를 재해석한 제 2이사야가 독특한 이유다. 끝까지 아이돌이란 만들어진 존재에 매몰된다면 끊임없는 갈등으로 공허감을 느끼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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