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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설

[사설] 정작 당사자가 없는 한국교회

입력 : 2019. 07. 28 | 수정 : 2019. 07. 28 | A29

 

삶의 최후의 보후로 여긴 여성이 향한 곳은 교회였다. KBS 사시기획 창을 통해 폭로된 교회 성폭력은 너무도 익숙한 일상으로 비쳤다. 인천 모 교회 목사가 저지른 그루밍 성폭력을 바라본 그 교회 교인은 “나이 차이 나는 연인이었다”는 기가 막힌 변호를 이어갔다. 목사가 스물여섯 명 여학생과 성관계를 해도 그저 “나이 차이 나는 연인이었다”고 말하는 종교가 된 것이다. 언제부터 교회가 성에 이토록 관대했나.


문대식은 여대생을 바라보며 내심 걱정했다. “여자 청년 다섯 명 중 두 명은 결혼 전에 섹스를 했다니까.” 교회는 마치 가까운 언니와 누나가 순결을 잃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내 딸을, 나의 누나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기독교 발(發) 공포팔이는 이 뿐만 아니다. 청와대 앞 천막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은 ‘문재인은 하야하라’ 현수막을 뒤로하고 단식했다. 이유 중 하나는 동성애 반대였다.


이애실 씨가 출간한 『만화 어? 성경이 읽어지네!』엔 인상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인도 카주라호 사원 미투나 상인지 벽화인지 모를 그림을 그려놓고 “포르노”라며 “성화(性畵)가 그들의 성화(聖畵)”라는 웃지 못할 해석을 담아놨다. 요가 상(狀)은 “마약을 피우며 앉아 있는데 이들이 마약중독 남자 성창(性娼)”으로 묘사하는데 고대 힌두교가 쾌락과 타락의 온상이란 주장에서 역사적 고증도 맞지 않고 해석도 틀렸다. 이런 수준 떨어지는 책이 겨냥한 독자층은 청소년이다. 청년 사역자로 등장한 이들도 다르지 않다. 음란물은 끊어야하고 성은 억제해야 할 죄로 가르치는 수준이다.


여신 숭배 사상조차 접하지 못한 이들은 시대착오적 상상을 넘어 인간이 어떻게 성을 주체적으로 이해했는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죄’라는 단어로 공포를 유발한다. 이들은 10년 전 반기독교시민연합이 주도한 ‘바이블 19금(禁) 제정 운동’을 잊어버렸나보다. 오난(창세 38,10)과 월경을 다룬 조항(레위 15,26), 성폭행 당한 레위인 첩 이야기(사사 20,6)도 문자적으로 실행해야 할 거룩한 성(聖)스러운 구절인가?


문대식도 청소년을 겨냥해 자신의 책을 팔았다. 여성은 자동차 가진 남자를 조심해야하고 24살까지 연애해선 안 되며,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 피해자의 음란함도 분명히 죄라고 주장하니. 한국교회 성 인지 수준은 이 모양 이 꼴이다. 성폭력이 드러난 이유는 악마가 교회를 공격했기 때문이 아니다. 목사가 여성을 성적 해소 수단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목사들의 성 인지부터 챙겨야 할 상황에 애먼 여학생 순결을 걱정하는 꼴이니 목사들부터 미신(迷信)에서 자유하길 바란다. 니체가 귀족도덕과 노예도덕을 왜 나눴겠는가.


10년 전부터 주일학교에 주일학생이 없고, 청년부에 청년이 없으며 한국교회엔 교인이 없다. 그래도 목사들은 “난 야훼로 즐거워하리”(하박 3,18) 노래를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