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오피니언/사설

[사설] 사나에게 이 무슨 왜곡된 민족주의 폭행인가

입력 : 2019. 05. 02 | 수정 : 2019. 05. 02 | 디지털판

 

유일하게 연호(年號)를 사용하는 나라는 일본 밖에 없다. 기원 후 645년 고토쿠 일왕이 다이카(大化)’를 사용하며 어제. 일본은 공식적 레이와(令和) 시대를 맞았다. 질서, 평화, 조화를 담은 레이와가 일본인에게 새로운 시대 염원으로 다가왔다. 연호는 임금이 현존하는 군주제 국가에서 임금이 즉위 할 때 붙이는 그 나라의 시대 이름이다. 기원전 140년 중국 한() 무제(武帝)건원(建元)’을 사용한 시초로 알려졌으며 우리나라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391년 즉위하며 정한 영락(永樂)’이 문헌상 남은 최초 연호다.

 

을미사변으로 개화당 내각이 정권을 장악하고 연호 건양(建陽·1896-7)’을 제정해 대한제국을 수립하자 광무(光武·1897-1907)’로 이어졌다. 인간성을 상실했던 일제강점기를 지나 해방 후 서력기원을 사용한 미군정기(1945-48)를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지자 법률로 단군기원을 공용연호로 제정했다(1948. 9. 25). 외국과 교류하다 불편을 낳자 공문서에 단기와 서기를 혼용해 사용했고 박정희 정권에서야 서기 표시를 공식 채택함으로써 연호는 사라졌다(1961. 12. 2).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보내는 일본인의 염원은 새로운 시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도쿄 긴자 거리를 걸어보라, 미쓰코시 백화점이 내건 문구가 보일 것이다. 레이와 개원을 축하하며 1일 자정 넘어 개장한 634m 도쿄 스카이트리 전망대가 보일 것이다. 시부야는 어떤가. 30일 자정에 가깝자 카운트다운에 레이와가 있다는 점이 우리나라에선 생소하게 보일 것이다. 일왕이 누구기에 시대의 단절, 새로운 시대, 즐거운 분위기가 형성된단 말인가. 트와이스 멤버 미나토자키 사나(湊﨑紗夏·22)의 마음도 보통의 일본인 염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려 1,300년 전부터 사용한 연호를 군국주의 시대에서나 사용한 쇼와(昭和)도 전범 히로히토도 아닌 지나간 연호에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는 말을 일왕과 엮어 반한감정을 부추기는 괴상한 사태가 벌어졌다. 헤이세이 시대 아키히토 일왕은 지난 해 8월 도쿄 부도칸(武道館)에서 가진 일본 종전 기념식에서 아베 총리와 다르게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을 한다” “전쟁 참화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년 연속 반성인 것이다. 왕정복고(王政復古)도 아닌 자신의 의지로 지나간 헤이세이 시대에 아쉬움을 드러낸 사나의 표현이 군국주의를 제창하는 말로 읽혀진다면 왜곡된 민족주의이자 희생자 의식에 다르지 않다.

 

베트남 전쟁에서 국군이 저지른 폭력 앞에서는 선택적 기억을 내세우며 정작 일제강점기에 대한 피해자임을 자처해 사나를 선택적으로 폭행하는 행동은 가해자를 지목하기 힘든 커뮤니티 사이트 특유의 집단적 폭력이다. 삼일절에 일본 여행을 다녀와 뭇매 맞은 한 유튜버의 눈물이 다른 나라 국민 눈엔 감성(感性)의 민족주의가 어떻게 보이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