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 01. 08 | 수정 : 2020. 01. 08 | B8-9
시대여행 <3>
노래방 선택에 실패한 세 남자
그럼에도 기어이 찾아낸 성가
다 함께 완창한 추억의 그 곡
제목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궁금하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해야겠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로 경건의 포문을 열고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찬송가를 찾아 헤매다보면 노래방을 잘못 선택했구나, 다음엔 TJ기기 노래방을 찾아내겠노라 다짐하게 된다고.
아무리 찾아도 ‘야곱의 축복’ ‘고요한 밤 거룩한 밤’밖에 없는 책자 속 찬송가를 뒤적이면 끝내 “부를 수 있는 곡이 없네”하고 포기하고 만다. 그럼에도 묵묵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전주 간주에 4절까지 꿋꿋이 부른 대풍이가 대단했다. 그 옆에서 러블리즈와 오마이걸을 검색하느라 바쁜 나머지 어깨에 지운 짐이 많던 시규의 ‘바램’은 제일 정상적인 선곡이었다.
실은 나하고 맞지도 않는 걸그룹 노래 꾸역꾸역 부를 바에야 우리 모두가 알던 찬송가 위주로 부르면 좋을 테지만. 교회서 부르던 곡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세상 노래라면 기겁한 채 찬양만 부르자고 말한 대풍이에게 “어제처럼 굿나잇~” 따위의 세속적 노래를 들려줄 순 없었다. 그렇다고 시규가 나처럼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았고. 대풍이가 “이거나 부르자”며 용케도 찾아낸 곡 하나를 짚었다.
중학생 시절부터 좋아했던 이 곡을 떠올려보니 향수에 취했다. 하이라이트는 랩이 아닐까? “나 같은 죄인 큰 죄인 살리신/못난 나를 자랑하며 이 세상에 알리신…” 연약하다 못해 무능한 인간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해보니 감격과 신앙심에 불타올랐다. 감격한 나머지 “엎드려 절하세” 구절에선 무릎을 세 번이나 꿇으며 올려드린 것이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 항상 반값 할인하던 콘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다. 벤치에 앉아 ‘은혜’라는 주제의 대화를 줄곧 나눴는데. 교내 방송이 흐르기 전까지 떠들어대던 그 때의 기억도 이 노래에 담겨 있었다.
우리는 학교 벤치에 앉아 줄곧 신앙 이야기를 이어갔다. 자유, 은혜, 예수. 신의 존재와 교회 이야기를 나눴다.
포기하지 않는다
암흑 속 찬송가를 찾아 헤매던
세 남자의 뜨거운 신심과 열정
뜨뜻미지근하지 않는다
장로교, 가톨릭 스타일도 아닌
순수(?) 오순절의 대부흥성회
실패하지 않는다
엎드려 절하고 통곡하며 불러
되살아나는 추억 속 은혜성가
지금도 시규와 대풍이 그리고 나의 세계에서 인간은 연약한 존재다. 교회에선 이를 죄성(罪性)으로 가르치곤 한다. 내게 그 죄란 성질은 교회가 인간을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도록 속박한 기제에 불과했지만 여전히 시규와 대풍이에겐 인간의 속성이었다. 인간의 타락은 동의할 수 없지만 연약한 인간엔 동의했다. 그 인간들에게 찾아온 예수 그리스도가 희생함으로써 화해하게 한다(에베2,13)는 공통 담론 속에서 열창을 이어갔다.
오순절 교인이던 그 시절, 찬송가도 열정적으로 불렀다. 가톨릭과 장로교회처럼 예전보다 콘서트식 예배가 더 익숙한 이유다. ‘뜨거운 신앙’이라 할 테지만 감정은 찬바람과 함께 식기 마련이다. 대풍이와 시규가 그 불을 지폈다.
마이크를 들고 힘껏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를 살아계신 하나님께 올려드렸다. 시규는 카메라로 마이크를 든 감격스런 장면을 담아주자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성령께서 역사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 어렵다던 ‘폭풍 속의 주’를 성심성의껏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애절하게 구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바쳤다. 우리들의 심령대부흥성회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감동, 감격, 일치, 화해, 성령충만함으로 성료할 수 있었다. 지금도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를 불러준 나얼 선생께 고개 숙여 감사드리는 바다.
하여튼 주여삼창에 방언까지 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그 때의 향수를 말한 데서 눈치 챘듯, 나는 더 이상 예전의 그 신앙을 간직하지 않는다. 다만 감정과 기억으로 ‘그 땐 그랬었지’만을 가질 뿐이다. 그래선지 그 신앙의 향수를 지금도 간직한 내가 그 신앙으로 살아가던 대풍이와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성령충만함도 오래지 않아 커피를 마시며 쉰 목을 풀어주던 사이에 강한 논쟁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원래 큰 은혜를 받으면 왕(王)마귀가 시험에 빠지게 만들기 마련이다.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고 장담하던 대풍이에게 마귀 사탄 급에 해당하는 “성경도 오류가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이제 교회를 나온 시규는 격렬한 논쟁을 지켜만 봤다. 그러나 “넌 믿음도 없냐” “신학 공부나 해라”는 왕마귀의 시험도 머잖아 끝나야 했다. 그가 사는 기도원에서 하룻밤 묵어야 했기 때문이다. 짜증도 아버님과 함께 사라졌다. 1년 만에 아버님과 어머님을 뵈니 마음이 뭉클했다.
시규와 헤어지고 둘이서 향한 기도원은 적막하다 못해 싸늘했다. 불과 2-30년 전 이곳 풍경도 시끌벅적했겠지. 어느덧 가을도 가까이 다가온 것이다. 철없는 대풍이를 위해 물신양면 챙겨주는 부모님을 보니 흔들리는 토대의 신앙을 비판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기도원이란 세계를 무너뜨리기엔 시기상조 아닐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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