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용으로 말하려는 작품 의미
반복, 과거도 아닌 지금의 조각
작가 문이삭 ‘A의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 그 문 이후’를 보면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지옥의 문’이 생각난다. 전시장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이다. 절규하는 듯 손을 뻗는 모습과 달려가는 듯한 다리 근육, 예수의 박힌 못이 생각나는 짙게 찔린 조각은 한 조각 안에서 드넓은 시간과 다채로운 존재를 아우른다.
통로로 보이는 뻥 뚫린 빈 공간에서 ‘Index_초전리 미륵불’을 비롯해 전시장 풍경을 볼 수 있다. 각도를 틀면 ‘어린이 조각가’도 보인다. 작품 설명을 읽어보면 이를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관람자가 작품의 비어있는 내부를 통해 전시장의 여러 풍경을 투영해볼 수 있도록 하면서, 조각의 과거와 현재, 이미지와 물질, 그리기와 만들기 같은 다층적 시각 장을 펼쳐낸다.”
전시장 작품 곳곳에서 기존 자신의 작품을 재해석 하거나 재구성하는 경우를 본다. 자기 자신이 보고 표현한 작품을 재인용한 것은 미학에서는 어떤 의미를 가질지 궁금했다. 단순한 반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시 새로운 작품으로 만들어가며 과정을 말하려는 건 아닌지를 물었다. 동시에 단일한 조각으로 보이면서도 하나의 존재하는 작품으로 볼 때 느껴지는 감각에 이를 즈음 재인용 방식이 흥미로웠다.
이 작품은 전시장에 들어오면 가장 보이지만, 여섯 작품을 보다가 뒤늦게 관람했다. 제일 먼저 그 문 이후를 바라보면서 전시장을 투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로댕의 ‘지옥의 문’과도 함께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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