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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완료/신학; 신앙

[다시 쓰는 은혜사] <3> 한 여름의 침묵

입력 : 2018. 09. 05 | A26


다시 쓰는 恩惠史, 교회편: 나는 어디로 가나 <3>


교회를 나오고 1년 9개월 4일만이었다. 도서관에서 알바하느라 여념 없던 작년 여름, 뜬금없이 교회 사모에게 연락이 왔다. 고민도 않은 채 곧장 받았다. 받으리라 상상 못했다는 듯, 한 마디 던졌다. “어? 전화는 받네?”*


한 시간 가량 통화한 걸로 기억한다.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무슨 이유로 교회를 나왔는지. 앞으로 무얼 하며 지낼 건지. 어느새 교회에 나라는 존재가 금기시 되고, 집단 기억에서 소거되었음을 느꼈다. 살아있는 존재를 두고 죽은 존재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라.


흥분과 설렘을 안고 신학교에 입학해 매일 밤 8시부터 10시까지 기도했다. 아무도 없던, 척박한 곳에서 헤쳐나갈 가냘픈 자아를 생각하면 지금도 딱하기만 하다. 담목은 ‘눈밭에 발가벗은 갓난아기를 내보내는 심정’으로 비유했을 정도니.


기도하기 전, 대강당 로비에서 찍은 황혼.


학부 1학년 여름 방학, 교회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다.


황혼이 져 가는 고속버스 안.



낮은 성서 읽고, 밤은 기도했다. 하느님께 쓰임 받게 해달라고, 어떤 복도 원하지 않으니 통일과 종북 척결에 써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러다 얼마 되지 않아 지쳐버렸다. 대강당에 앉아 메아리 없는 “쭈의여~!” “따·따·따·따” “예─쑤!”를 들으며 잠 들곤 했다. 성서 읽기만하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게 마귀 역사라도 임한 걸까.


막상 종착역이자 가나안으로 생각했던 신학교에 도착하니 타락한 선배 이야기, 숨겨진 정치권 싸움에 내 신앙을 지키려, 나만의 신앙을 견고하게 쌓으려고 노력했다. 그 결실이 낮엔 성서, 밤엔 기도였다.


유성에서 자택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교회로 달려가 금요철야예배 찬양을 인도해야 한다. 뒷자리에 앉은 담목 표정이 어두우면 지난 주일, 새벽 예배드리지 않아서 그런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지. 더 열심히 해야 하는데, 밤새서라도 주일 새벽을 깨워야 하는데. 불과 3개월 만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었다.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지려하자 서서히 메말라 간다고 느꼈다.


오른쪽 화면은 TV조선 뉴스쇼 판이다. K-보수주의와 복음주의를 지켜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나는 포스터를, 너희는 영화를.


청년학생회 행사 포스터/나름 아이디어 내보겠다고 만들어봤는데, 결국 빠꾸 먹었다. 담목이랑 상의한 대로 만들기로 했는데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살기 위해서는 무언가라도 해야 했다. 청년학생회 행사를 준비하던 여름, 학부 1학년 신학생 청년은 평소대로 교회에 출근했다. 커피를 뽑아들고 방송실에 들어갔다. 한창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란이 불거진 시기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집요하게 과거를 파고들었다.


간단한 질문부터 시작했다. 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걸까. 왜 교회 사역이 고통스러운 걸까. 왜 교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걸까. 특정 사건이 문제였다. 그 때, 강력하게 항의했으면. 그 때, 내가 관계를 청산했으면. 내가 그때, 제대로 복수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강하지 못했던 나를 후회했다. 시간이 지나 이미 존재하지도 않는 적의 무덤을 찾아가 뼈라도 으스러뜨리기 위해 파헤쳐댔다.


A4 열 페이지를 가득 메운 과거사 재조사는 부관참시로 끝을 맺고 말았다. 묵언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동안 하느님도 침묵을 지켰다. 적폐를 청산하고야 말겠다던 칼춤이 어느덧 추풍낙엽에 가려졌다. 한 여름의 침묵이다.


하느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내 하고 싶은 대로 해댔으니. 그러다 우연히 드라마를 보며 깨달았다. 아동 학대 논란으로 들끓던 ‘여왕의 교실’에서.


누구에게나 신임 받던 김도진이 반장이 되자 권력을 잡고 차별하기 시작했다. 색채 강한 아이에겐 비위나 맞춰주고, 점수에 목마른 아이에게 점수 조작해 과제 셔틀로 만들고. 뒷골목에서 유난히 강해진 김도진이 상대적 약자가 된 손임보를 야구배트로 패려는 순간 담임 마여진이 침묵을 깨고 등장한다.


경위서를 쓰라며 근신하던 김도진이 교사들을 피해 스크린도어도 없는 역사 끄트머리에 섰다. 학교는 반장 김도진을 찾았지, 인간 김도진을 찾지 않았다. 사랑 받고, 애정을 원한 김도진이 선택한 건 집요하게 과거를 파고드는 일이다. 다섯 번이나 파양 된 사건을 되새기며, 약자에겐 강하게. 강한 자에겐 비위를.


ⓒ MBC


ⓒ MBC


ⓒ MBC


ⓒ MBC


ⓒ MBC



죽음의 심연 앞에 오른손을 굳게 잡은 건 독재자로 군림하던 담임 마여진이다. 여전히 고작 선택한 게 이거냐고, 해 볼 테면 해보라며 면박을 주었다. 그러나 너와 함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달려오는 지하철에 두려운 나머지 하얗게 질린 김도진이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살려 달라 말했다. 마여진이 도진이를 낚아 채 품어 안았다.


물론, 통화하며 버려진 자식처럼 방치해 둔 사모를 이해한다고 말했다. 어쩔 수 없던 상황 아니겠냐고. 그가 제안한 다음 달 약속도 흔쾌히 수락했다. 매일, 그가 내게 전화하기를 바랬다. 여전히 그의 기억에 내가 소거되지 않았기를 바랬다. 기대했기 때문일까, 그대 없는 겨울이 저만큼 다가와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실제로 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