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서63 17살까지 키스를 못하면 헐크로 변해버린다고?:『지구를 안아줘』 지구를 안아줘김혜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76쪽 | 1만3000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집. 표지에서 눈치를 챘듯 무척 재미있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인간이면 누구든지 경험할 입시, 꿈, 인간관계, 갑자기 재난이 일어나는 상상 등 흥미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너무 가볍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다. 적당히 가벼우면서 무겁지도 않다. 애써 교훈을 담으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유쾌한 풍자에 어처구니없는 웃음도 났고, 씁쓸한 뒷맛도 진해졌다. 특히 키스 바이러스에 감염되고만 학생들이 작가 이상의 날개를 읽으며 헐크로 변해가는 장면에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웃음 뒤 기억에 남은 내용은 없었다. 다음은 두 개의 에피소드를 정리한 내용.#키스 바이러스: 윤아‘키스 바이러스’를 피하려.. 2024. 10. 10. 07:25 ‘나는 해록이의 것’… 그게 어떻게 사랑일 수 있겠니:『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이꽃님 지음 | 우리학교 | 208쪽 | 1만3500원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제목에는 하나의 단어가 빠져 있다. ‘당연하게도 나는 너를’ 사랑해. 어느 날부터 해록이가 해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해주는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날 좋아하나 싶었다. 남자애 해록이는 입학하면서부터 여자애들 사이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잘 나가는 애였다.(14쪽1문단) 머리 스타일, 옷차림 뭐든 잘 어울린 녀석이다.(14,2) 그런 해록이가 해주를 바라봐주는 게 설레기도 했고, 떨리기도 했다. 불안하기도 했다. 해주보다 더 예쁜 온주에게 그 시선이 옮겨갔기 때문이다. 김온주에게로.(26,2) “나도 알아. 온주가 눈에 띌 만큼 예쁘다는 거, 키가 크고 늘씬해서 사람들의 시선이 제일.. 2024. 10. 10. 07:25 어느 날 내 딸이 남학생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Fly, Daddy, Fly』 Fly, Daddy, Fly가네시로 가즈키 지음 | 양억관 옮김 | 북폴리오 | 259쪽 이름 모를 남학생에게 얻어맞은 건 딸 하루카뿐만이 아니었다. 위로금 몇 푼, 누군가에게 지시 받은 대사 같은 사과, 별 일 아니라는 당당함 앞에 아버지란 당신의 존재도 같이 무너져 내렸다. 딸은 한 마디 항의조차 않은 무능한 아버지를 외면하고 만다. 그날 무능한 아버지 스즈키 하지메는 모든 것을 잃었다. 남은 것은 체념뿐이다. 스즈키는 폭행범 남학생 이시하라를 찔러 죽이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찾아간 교정. 눈에 보이는 아무 학생이나 붙잡고 부엌칼을 휘둘렀다. 순식간에 제압된 스즈키는 또 한 번 황당함에 쓰러졌다. 학교를 잘못 찾아간 것이었다. 깨어난 스즈키에게 손을 내민 건 고등학교 2학년 미나가타. “우리가 이시하.. 2024. 10. 10. 07:25 오직, 죽은 자만 기리는 왜곡된 기억 방식의 한국사회:『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지음 | 난다 | 268쪽 | 1만5000원 위키피디아에서 천안함 피격 사건은 다음처럼 설명된다. ‘천안함 피격 사건은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PCC 772 천안이 조선 인민군 해군 잠수함의 어뢰에 의해서 격침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군 장병 40명이 사망했으며 6명이 실종되었다.’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를 읽으며 첫 단원에서부터 내가 알던 퍼즐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사실 관계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특정 정보만 기억하던 탓이다. ‘천안함 침몰 후 58명의 장병이 사건 현장에서 구조되었다.’ 저자 김승섭도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 전까지는 위키피디아 본문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나 역시 서.. 2024. 5. 14. 03:10 [이야기 꿰매며] 누구에게나 못다 할 무언의 사연이 있어 여중생 은재가 까탈스레 행동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습니다.(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최영희) 말 못 할 사연 말이죠. 자식뻘 사우에게 한글 좀 알려 달라 말하기까지 속으로 끙끙 앓은 찔레꽃 아주머니의 사연도 그렇습니다.(서울 사는 외계인, 이상건)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사연 하나 쯤은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만난 리하가 알고 보니 내 가장 친한 친구의 피해자라는 사실 앞에 누구라도 할 말을 잃고 말 겁니다.(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진실을 마주하고 그저 도망갔더라면, 더는 이야기로, 우리 곁으로 오지 않았을 겁니다. 그저 ‘진실을 말하지 않은 파렴치한 지민’ ‘그까짓 용서 않는 리하’라고 서로를 오해하고 말았을 겁니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목도해도(창밖의 아이들, 이선주) 견디기.. 2024. 5. 10. 11:12 [문정동 서재] 괴물 한쪽 눈을 뜨다 外 ▲열여덟 너의 존재감 아무도 없는 야심한 시간, 학교의 유리창이 모조리 와장창 깨진다. 범인은 누구일까. 세 명의 여고생을 둘러싸고 벌어진 한 가지 사건에는 다양한 사연이 숨겨져 있다. 아이들에게 무심한 척하는 담임의 존재도 베일에 가려져 있어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 과연 범인은 밝혀질 것인가.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천안함과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봤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천안함과 세월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피격과 함께 선체 두 동강 나고 침몰해 버린 천안함, 연속변침에 못 이겨 바다에 고꾸라진 세월호. 두 사건 모두 살아남은 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보건학자 김승섭 교수는 천안함과 세월호 이후 살아남은 자에게 주목해 마음을 묻는다. 대중서에 남겨 놓은 연구를 따라가다 보면 .. 2024. 5. 8. 19:36 25시, 26시... 시간마저도 사들여 망가지는 사람들:『숲의 시간』 숲의 시간 김진나 지음 | 문학동네 | 192쪽 | 1만1000원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흠모할 수는 있으나 그 아름다움을 훔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아름다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다. 욕망은 할 수 있으나 훔칠 수 없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을 가질 만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태계는 돈이면 모든 아름다움을 살 수 있다고 속삭인다. 자유와 사랑, 우정과 시간까지 모조리…. 그래, 모든 걸 돈으로 사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편리할까. 또 얼마나 편리하게 썩어 버릴까. 모든 존재에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도 정해진 시간이 있다. 정해진 시간을 무제한으로 만들려는 무모함이 돈의 존재와 인간의 욕구에서 출발한다. 이 책 ‘숲의 시간’에서 묘사된 도시 크룽을 보면.. 2024. 5. 8. 19:34 ‘꼭 복싱이어야만 했나’ 복수라는 지루한 여정:『싸우는 소년』 싸우는 소년 오문세 지음 | 문학동네 | 255쪽 | 1만1500원 솔직한 마음으론 읽는 내내 지루했다. 소재는 복싱인데 복싱과 상관없는 내용이 소설 전체를 감싼다. 군더더기가 많은 문장력은 이해한다. 그럼 소재를 잘 활용해야 했다. 복싱 말고 검도가 됐든 태권도가 됐든 운동 종목 아무거나 바꿔놔도 전개에는 아무 상관없을 지경이다. 주인공이 왜 복싱을 배우려 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질질 끌다보니 훈련 과정이 빈약했다. 그냥 싸움 잘하는 동네 형한테 찾아가서 한 달 수련하는 게 나을 정도다. 아니면 “난 복수하는 녀석한텐 복싱 안 가르친다”는 도도한 주찬영 관장 보란 듯이 스스로 단련하며 마음을 돌이키는 설정도 괜찮았을 텐데. 그런 거 없다. 중간 중간 튀어나오는 욕설도 촌스럽다는 느낌을 준다. 그런 맥.. 2024. 5. 8. 19:34 첫 생리, 소녀는 시술을 결심했다:『창밖의 아이들』 창밖의 아이들 이선주 지음 | 문학동네 | 196쪽 | 1만2000원 주인공 유란을 보면서 이제 곧 여고생이 될 열여섯 소녀가 아니라 서른 살도 훌쩍 넘은 작가 이선주가 보였다. 나쁘게 말해서 서른 넘은 여성이 교복을 입고 ‘인생은 이렇다’더라 미소 짓고 있었다. “내가 본 그것들을 정직하게 쓰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그래서 소개글에 나온 것처럼 영구임대아파트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경험을 청소년 주인공 소설보다 지금 자신의 에세이나 소설로 써봤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남았다.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땐 ‘와! 훌륭한 문장력, 대단한데?’하고 놀랐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땐 ‘처음 읽었을 때보단 별로네’ 생각했고 세 번째 땐 문장력은 훌륭한데 왜 감동이 식어 버렸는지를 깨달았다. 문장력.. 2024. 5. 8. 19:34 정의할 수 없는 사과… “미안해” 외마디에 담긴 의미:『완벽한 사과는 없다』 완벽한 사과는 없다 김혜진 지음 | 뜨인돌출판사 | 168쪽 | 1만1100원 리하에게 진실을 말하기엔 늦어버렸다. 리하의 인생을 박살낸 신지호가 내 친구라는 사실을 말하기엔 너무도 늦어버린 것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지호가 사라졌다. 이름 모를 고등학생이 죽었다고 한다. 지호의 이유 모를 강제 전학이 연이어 벌어졌다. 주인공 지민은 지호와 어려서부터 친했다. 애니메이션 피노키오를 보면서 마치 지민은 지미니 크리켓, 지호는 피노키오가 된 것처럼 굴었다. 지미니 크리켓이 피노키오의 양심인 것처럼 지민이도 지호에게 그런 존재였다. “네가 내 양심이야.” 도대체 지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아이스크림 하나, 맥스봉 만치 친절한 정다온 같은 학원을 다니는 다온이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다. 아이스크림.. 2024. 3. 25. 11:52 이전 1 2 3 4 5 ··· 7 다음